드넓은 바다의 찰랑이는 파도에 눈을 뺏긴 나는 이곳이 청산도 앞바다의 청정구역 한가운데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가본 청산도는 섬이 아닌 조그마한 육지 같은 느낌으로 그리 높지 않은 산과 나무가 많은 곳으로 기억된다. 선착장 주변의 작은 마을과 상점들, 새소리와 바람에 스쳐지는 나무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가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는 정겹고 조용한 섬이다. 완도지역 도로 설계를 위해 출장 중 주말에 시간을 내어 방문한 직장 동료의 고향 청산도의 첫인상이다. 코로 크게 숨을 쉬니 신선한 공기가 내 가슴 깊숙이 들어온다. 청산도에는 세 가지 자랑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전복, 구들장논, 서편제길이다. 세계 중요 농업유산으로 등재된 ‘구들장논’이 청산도 사람의 긍지라면, 청산도의 살림을 책임지는 전복은 이들의 삶 자체이다.

동료 친척이 운영하는 상당히 큰 면적의 전복 종묘배양장에 들러 처음 보는 아주 작은 전복 씨를 구경하고 종묘장 앞 간이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즈음, 친척분이 한 그릇 가득 전복을 내오셨다. 청산도 전복이다. 크기도 큼직하여 손바닥 안에 들어오고 어찌나 단단한지 요리조리 입속에서 돌려가며 먹는 동안 고소하고, 신선하고, 향긋한 바다 내음이 현지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맛에 눈이 저절로 감긴다. 종묘장 뒤쪽은 바다요, 앞쪽은 낮은 구릉지를 내려오는 굽은 길 옆에 갈대, 푸른 초목이 넓게 펼쳐지는 풍경이 낯익은 듯 느껴지는 순간 아! 이곳이 영화 ‘서편제’에서 장구를 치며 판소리를 부르며 걸어내려오던 장면 아닌가? 이런 행운과 즐거움이 있을 수 있나? 우연히 올려본 그곳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노란 유채꽃이 핀 굽어진 돌담길에서의 진도아리랑은 영화 최고의 장면이었다. 이곳이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청산도이다. 이날 오후는 서편제의 명장면인 드넓은 들판 굽은 길에 취하고, 직접 채취한 전복의 맛에 취한 하루였다.

청산도 전복은 엄청 신선하여 살은 그냥 한입에 씹어 먹거나 볼품없이 통째로 먹어도 별미이고, 회로 먹는 도톰한 전복이 입안으로 들어가니 오돌오돌~~쫄깃쫄깃~~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을까? 구워 먹고, 삶아먹고, 요리에 넣어 먹어도 남아 그다음 날 한 묶음씩 싸서 서울로 가져왔다. 그 시절 비싸고 귀한 전복을... 출출한 밤에 먹는 전복라면도 환상적이었다. 그 당시 생각지도 못한 전복을 통째로 퐁당... 이런 신비한 맛이 있을 수 있나. 낙지 라면, 주꾸미 라면, 대게 라면 등 다양한 레시피가 있지만 전복라면, 그 호사스러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늦은 밤 숙소 뒤편에 앉아 쏟아지는 별과 잔잔한 밤바다를 보면서 하루가 지나갔다. 청산도의 밤이다.

전복의 또 다른 매력은 내장이다. 푸르스름하고 괴이한 모습에 잠깐 망설여지는데 “그것 안 먹으면 뭐 하러 먹는데?”라는 식당 주인장 생각이 난다. 그래서 한입... 씁쓰름하면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겨온다. 다시 또 한입... 은근히 중독된다. 살은 소금장에 내장은 초장에 찍어 먹는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전복은 비싼 음식이라는 선입감이 있으나 다시마, 미역으로 키우는 양식이 많이 되고 있어 가격도 좋고 맛도 자연산과 별 차이가 없다. 전복은 한식, 중식, 양식 등에도 잘 어울리는 음식 재료로 예로부터 보양식으로 전해졌다.

‘흑산동인수산’
‘흑산동인수산’

 

목포에 전복 직판장 ‘흑산동인수산’이라는 집이 있다. 전복 도매업을 하면서 한켠에 식당을 하는 오래된 지역 맛집으로 전복만 판다. 대형 수족관이 있어 100% 활전복을 사용하여 주문하면 전복회, 찜, 구이, 전복죽을 먹을 만큼 준다. 처음에 전복 크기에 놀라 어찌 이것을 이 가격에! 구이는 통째로 구워서 그냥 뜯어(?) 먹는다. 입에서의 부드러운 촉감은 씹기에도 미안할 정도의 쫀득한 식감으로 전해오고 다 씹은 후의 고소한 향기는 오랫동안 입안에 머문다. 한잔 술이 생각나지만 식당에는 준비되어 있지 않아 손님이 직접 사가지고 와서 먹어야 한다. 식당 영업은 부수적이고 도매업이 본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집의 제일의 자랑거리는 전복죽이다. 내장이 제대로 들어가서 색감과 고소한 맛이 식욕을 돋우고 전복도 큼직하고 푸짐하게 들어 있어 씹히는 맛이 훌륭하다. 전남도 지역 도로사업을 하면서 도청 직원이 소개한 집으로 나 또한 친구에게 릴레이 소개되는 집이기도 하다. 옆 편의점에서 사온 음료와 술이 금세 식탁 위에 즐비하다. 모두가 즐겁다...

현지에서 택배로 주문하여 받아보는 기분도 꽤 즐길 만하다. 서울에서 전복 전문점을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으며 살아있는 전복을 맞이하면 탄성이 절로 난다. 이 기분은 현지 주문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대감으로 남쪽 바다가 통째로 전복과 함께 온 것 같은 기분이다. 포장도 크지 않아 뒤처리도 한결 가볍다. 간단한 손질로 그냥 먹으면 끝... 간간한 바다 맛이 있어 별도 소스가 필요 없다. 구운 전복은 포크에 푹(?) 찍어 먹을 수 있는 것도 집에서 누리는 특권이다. 가성비도 좋아 깊숙이 숨겨둔 와인을 슬그머니 꺼낸다.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 같다.

한여름날의 뜨거운 햇살이 저물어가는 저녁 무렵,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나만(?)의 전복을 찾아 식탁 위에 놓는다. 여기에 제주도 특별 음식인 전복 내장으로 만든 짭짤하면서 매우 고소한 ‘개우장’ 젓갈로 한여름의 입맛을 찾아본다. 슬로시티 청산도의 추억을 되새기며...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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