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접시 위에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잘 튀겨진 고기 위에 걸쭉한 소스가 덮여 나오면 양손에 포크, 나이프를 들고 한 입 크기로 썰어서 우아(?) 하게 스테이크처럼 먹던 요리가 돈가스이다. 수프도 나오고 소금, 후추 용기가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식탁보도 깔려있고 앞치마까지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코스로 즐기던 옛 풍경이 떠오른다. 수프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식감으로 접시 바닥을 긁으며 싹싹 먹었으며 돈가스는 조금씩 썰어 아껴먹은 기억이 아른하다. 거기에 동글한 모닝롤과 버터는 행복한 충만감을 주었다.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는 외식으로는 메밀소바, 명동칼국수, 돈가스가 가장 으뜸이었고 막내인 나는 누나들이 데려가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주로 명동에 밀집되어 있었다. 돈가스는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맛본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시절에는 경양식 집들이 유행처럼 번져 학교 앞에는 작은 가게들이 여럿 있었으며 어느 집은 유럽풍의 이탈리아식으로 꾸민 집들도 있었다. 그 시절 가성비로는 최고였다. 부드러운 양송이 크림수프와 돈가스, 그리고 얇게 펴 담은 하얀 밥이 따로 나왔으며 길게 썰어놓은 단무지가 인상 깊었다. 접시에 펴서 나온 밥은 포크만으로는 먹기 힘들었던(?) 생각에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수프에 빵을 찍어 먹는 모습이 정말 폼(?) 났다...
아이들도 어릴 적에 돈가스를 상당히 좋아했다. 집 근처에 있는 ‘하얀집’이라는 작은 돈가스 전문점이 있었는데 직접 만든 수제 돈가스로 고기 살도 두툼하고 고소하고 바삭했던 기억이 있다. 포크는 바쁘게 움직이고 아이들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어난다. 이 집 돈가스는 나이프로 썰을 때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손에 느낄 정도의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그때의 돈가스가 추억 속에 간직된 어린 시절의 맛을 느끼게 한 것 같아 좋다.
돈가스는 돼지고기를 저민 뒤 튀김 옷을 입혀 조리되는 것으로 기름이 적은 안심을 사용한다. 경양식과 일본식 돈가스로 구분되는 데 70~80년대에는 비싼 음식으로 취급되어 데이트나 가족들의 특별한 날에 먹는 메뉴였다. 격식을 갖춰 입은 웨이터가 수프부터 시작해서 샐러드, 빵, 돈가스, 후식에 이르는 코스요리로 처음에 크림수프? 야채수프?를 선택할 때부터 벌써 마음은 설레기 시작하는 것이 경양식 돈가스이다. 이제는 대중화되면서 분식집, 일반 돈가스 전문점에서 취급되면서 널찍한 돈가스 한 장, 야구공처럼 동그란 모양의 밥과 야채, 단무지 등이 큰 접시에 함께 나오는 실용화가 되어 직장인들의 가벼운 식사로 인기가 높다.
일본식 돈가스는 2010년부터 성업하였으며 고기를 연하게 하기 위해 전용 망치로 두들겨 펴는 과정이 생기면서 크기는 경양식에 비해 작고 두툼하면서 연하며 튀김 옷도 부드럽게 개발되어 육즙을 느낄 수 있는 돈가스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전문 분식점이나 일식집에서 치즈 등 특색 있는 돈가스를 선보이고 있다. 돈가스와 밥, 반찬이 따로따로 나와 일본 가정식을 느끼게 하고 먹기 좋게 손질되어 나와 나이프가 필요 없다. 경양식은 납작한 고기를 튀김옷으로 단단하게 하여 조리되므로 소스는 돈가스 위에 뿌려 제공되고, 두툼하고 속이 촉촉한 일본식 돈가스는 소스를 따로 찍어 먹는 쪽이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성북동에 추억의 옛날 돈가스를 하는 ‘금왕돈까스’가 있다. 지역에서 꽤 오래된 맛집으로 경양식 스타일이며 고기 두께는 얇고 크기는 크며 접시에 밥과 야채가 함께 있다. 추억의 맛을 찾는 남녀노소가 옛스러운 분위기에서 고소한 수프와 바삭바삭한 돈가스 위에 얹힌 소스가 진하지 않고 야채도 신선하다. 썰어 먹는 재미가 있어 기분이 좋고 깍두기와 아삭한 풋고추는 잘 어울리는 동반자이다. 고기도 등심, 안심 구분하여 기호에 맞게 제공되어 전문점답고 후추를 톡톡 뿌려먹는 추억의 오뚜기스프(?)가 반갑다. 주변에 돈가스 집들이 모여있다.

남산에 왕돈가스로 유명한 집에 여럿 있다. ‘원조 남산 돈가스’ ‘101번지 남산 돈가스’ 등 오래된 식당들이 남산 케이블과 주변에 성지처럼 여러 식당이 운집해있다. ‘왕돈가스’라는 용어가 처음 쓰인 곳으로 그냥 ‘남산 돈가스’라고 부른다. 크기도 크고 바삭하고 소스도 넘치도록 주어 진짜 왕돈가스이다. 고민할 필요 없이 부모님과 같이 가면 좋다. 케이블카 타고 남산타워 구경하는 코스에 위치한 곳으로 특히 등심을 사용하여 더 고소하고 바삭한 식감이 좋다. 옛날 방식대로 만드는 ‘원조 남산 돈가스’는 50년을 지켜온 식당으로 크기가 넓고 얇지 않은 두께로 옛 맛을 유지하고 있어 좋다.

인덕원에 수제 돈가스 전문점 ‘에버그린’이 있다. 조용한 골목길에 위치한 깨끗하고 아담한 집으로 사이드 메뉴는 뷔페식이며 부드러운 육질의 돈가스가 좋고 특히 직접 만들어 제공되는 빵은 특별하다. 이 빵과 수프 때문에 다시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따끈따끈한 온기와 갓 구워낸 신선한 향, 입에 착 붙는 부드러운 식감 등 빵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갖고 있어 푸드 러버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수프도 비교할 수 없는 맛으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고기도 얇지 않고 튀김도 기름지지 않아 좋고 빵, 수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로컬 맛집으로 돈가스 정식이 단일 메뉴이다. 자르는 중에도 김이 새어 나올 정도로 바로 튀겨 나오는 돈가스는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소스는 부먹(?) 형식의 경양식 돈가스 맛 그대로이고 살코기가 두툼하여 육즙과 씹히는 맛을 더해준다. 뷔페에는 밥, 샐러드, 깍두기, 단무지가 준비되어 있으며 번호표 대기는 필수다.
성복동이든 남산이든 고즈넉한 시간에 나들이하기 좋은 장소에서 칼질(?) 한번 해보고 구수한 크림수프의 추억 감성으로 젖어들고 싶어 이번 주말에는 아내와 데이트 한번 해볼까? 한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