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을 배경으로 일자로 늘어선 배들은 출렁거리는 바다와 어우러져 쏟아지는 달빛에 온몸을 적신다. 칠흑 같은 밤바다를 환하게 밝히는 ‘은빛어화’는 밤이 깊어도 꺼질 줄 모른다.’(‘울릉도 오징어잡이’에서) ‘바다 한가운데 불어오는 바람, 그 거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던(중략) 밤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는 불빛, 바다 위 빛나는 유일한 작은 별빛...’(‘오징어잡이 배’ 시에서).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 오징어잡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저녁 어둠이 오면 동해 먼 바다 저 끝에 환한 불빛이 끝없이 펼쳐지는 그곳에 수평선이 있음을 말해주는 배들로 장관을 이룬다. 오징어는 불빛에 잘 모이는 습성을 이용하여 채낚기 어법으로 잡는다. 해가 진 직후부터 해가 뜰 때까지... 울릉도 저동항에서는 저녁때가 되면 수많은 배들이 집어등을 달고 오징어잡이에 나서는데, 그 활기찬 광경은 ‘저동어화’라 하여 울릉 8경의 하나로 꼽는다. 저녁의 어두운 바다 위에 펼쳐지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화려한 불빛으로 유명하다.

오징어가 난리가 났다. 말려서, 쪄서, 삶아서, 튀겨서, 구워서 먹고 활오징어는 회로 먹는다. 우리나라 대표 주전부리로 이만한 것이 없다. 밥상 위에도 오징어 불고기, 오징어 국, 젓갈 등으로 요리되고 맥주 안주로도 탁월한 맛을 내는 구수한 음식 재료이다. 이렇게 친숙한 오징어가 몇 년째 흉년이다. 중국 어선이 동해까지 진출하여 싹쓸이 조업하는 바람에 7~8월이면 성어가 되어 제법 큰 오징어를 맛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현지에서 한 박스에 2만원이면 충분했던 오징어, 활오징어가 생긴 지 10년도 안 돼 이제는 금징어(?)가 되었다.

오래 전 가족들과 동해 송지호해수욕장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기 좋은 해변가 아침,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에 젖어있을 때 “오징어 왔어요. 싱싱한 오징어~~” 싱싱해서 회로 먹어도 된다는 아주머니 말에 아침 식사거리가 되었다. 그때는 활오징어가 없던 시절로 너무 싸서 수족관에 보관할 정도의 채산성이 없는 생선이기에 활오징어를 잡아봐야 별 이득이 없을 시절이었다. 누이가 이 오징어를 삶아서 내놓았는데 와~ 이런 맛은 처음이었다. 탱탱하고 연한 살과 마치 설탕을 뿌린 것 같은 단맛이 입에 착착 붙는다. 쫄깃한 식감과 겉에 붙어 있는 껍질까지도 어찌나 구수한 맛을 내는지 얼떨결에 주발 뚜껑에 반주를 안 할 수 없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 이후 ‘아침에 주발 뚜껑 반주’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때의 오징어 숙회 맛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오징어에 대한 또 하나의 추억으로 속초 중앙시장의 ‘근식이네’라는 가게가 있다. 시장 내 허술하기 짝이 없는 방 안에 식탁 몇 개 놓고 노부부가 하시는 곳으로 오징어회 무침이 기가 막히다. 오징어회에 큰 배를 아낌없이 채로 썰어 양념과 함께 회무침으로 한입 하다가 나중에 밥을 넣어 비벼 먹으니 정말 환상적이었다. 달콤 고소하고 쫄깃한 식감은 얼음과 함께 시원한 물회가 되어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별것 아닌 오징어를 이렇게 변신시키는 할머니의 솜씨가 대단하다. 속초 갈 때마다 찾곤 하였지만 아마도 지금은 없어진 식당이 된 것 같다.

4~5월 조업금지 시기를 지난 한여름의 오징어는 크다. 친숙한 식재료로서 요리 방법도 회, 초밥, 찜, 튀김, 무침, 볶음, 순대 등 다양한데 피데기(반건조) 오징어는 부드럽기 때문에 건오징어보다 인기가 높다. 오징어회는 냄새가 없어 회를 처음 먹는 사람들에게 권하기 좋은 요리이며 쫄깃쫄깃하여 고추장에 무쳐먹으면 담백한 맛이 나고, 갓 뜬 오징어회는 자기가 혼자 꿈틀대고 특유의 색도 변하는 등 볼거리가 있다. 반면에 날 것으로 먹으면 생기는 끈적끈적한 식감으로 호불호가 있다. 오징어는 소화 흡수가 좋고 단백질 공급원으로 두뇌 활동에 매우 좋은 음식으로 특히 건오징어는 타우린이 많이 들어 있어 혈압 조절 및 혈관 건강에 유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린 오징어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먹었다고 한다.

작은형 유학 시절이 생각난다. 마른 오징어를 무척 좋아했던 형을 위해 어머니가 오징어를 사서 미국으로 부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그런 음식을 보내는 것도, 현지에서 먹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오징어의 특이한 냄새는 기숙사 외국인에게는 상당히 고역이었을 것이기에 이불 속에 깊숙이 보관하여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 김치도 마찬가지였다. “보내는 게 문제지 보내면 어떻게든 다 먹는다”며 냄새나지 않게 고추장과 함께 김치를 꼭꼭 포장하여 보내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미혜 횟집”
“미혜 횟집”

 

오랜만에 영덕군에 있는 “미혜 횟집”에서 오징어 물회를 만났다. 가늘게 썬 오징어를 야채와 양념 소스를 넣어 따뜻한 밥과 함께 먹는 물회는 시원하고 고소한 오징어 맛이 특별하여 지역에서는 꽤 알려진 식당으로 보인다. 바닷가 바로 옆에 있어 운치도 있으며 오징어가 싱싱해서 점심시간에 모든 손님이 오징어 물회를 먹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오징어집’
‘오징어집’

 

오징어회를 특별하게 손질하는 집이 있다.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오징어집’으로 두껍지 않은 오징어를 기술적으로 얇게 저며내어 복어회처럼 반 투명한 사시미로 만들어내는 주인장의 솜씨가 대단하다. 처음 보는 방식으로 쫄깃쫄깃한 식감이 입안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치아에까지 전달되는 듯하고 깔끔하며, 손질된 오징어 색깔은 순백색으로 모양도 정말 예쁘게 펼쳐져 있어 먹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 잡내가 없어 첫 한 점을 소스 없이 그냥 먹으니 순수한 맛이 입속으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오래 숙련된 솜씨의 오징어회는 반짝반짝한 윤기가 흐르고, 어쩜 이렇게 고급스러운 모양으로 썰어낼 수 있는지 방문할 때마다 경이로운 감정이 느껴진다. 채 썰은 오징어회는 탱글탱글 오돌오돌한 식감이, 포 뜬 오징어회는 쫀득쫀득 녹진녹진한 느낌으로 푸드러버들을 별미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해질녘이면 출발하는 오징어배의 출어 행렬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오징어 하면 으레 울릉도가 떠오르나 이제는 너무 비싸져서 흔한 급식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음식이 된 듯하다. 오징어가 몸의 색을 바꾸는데 3~5초면 충분하다 하니 어서 빨리 오징어 몸값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글 손영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

 

손영한은 서울이 고향이며, 모나지 않고 정서적으로 순한 서울 맛을 찾아 과거, 현재, 미래를 여행한다. 
35년간 고속도로, 국도를 설계한 도로 및 공항 기술사로 한양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석사. 한라대학교, 인덕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저작권자 © 중앙이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