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터리 산업에 320조 퍼부으며 압도적 성장세...한국은 지원 공백에 흔들린다
중요 기반 기술인 배터리 기술력 뒤처지면 AI·로봇·데이터센터 등 미래 산업까지 위기
정부, 생산세제·R&D 확대 본격화 움직임... 골든타임 놓치면 늦는다

[중앙이코노미뉴스 송태원] 중국 배터리 산업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생산 규모는 이미 압도적이고, 기술력도 빠르게 끌어올렸다.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중국 기업들은 자금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오로지 기술 개발과 생산 확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기업 혼자 힘만으로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처럼 정부가 전면에 나선 산업을 기업 단독으로 상대하는 것은 애초에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업계가 한국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도입을 ‘읍소’하는 이유다.

IRA는 2022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 제조업 유치 및 공급망 강화를 위해 추진한 산업 지원법이다. 자국 내 청정에너지 산업과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2023년까지 15년간 전기차 산업에 약 2310억 달러(약 320조원)를 지원하며, CATL과 BYD 등 주요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확대했다. CATL은 2024년 상반기에만 약 7300억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으며 BYD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약 52조8000억 원의 직접 보조금을 수령했다.

반면, 한국의 지원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국내에는 배터리 산업을 위한 별도 지원 제도가 없으며,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설비 투자액의 15%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적자를 낸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SK온은 국내 공장 증설에 매년 3000억씩 투자해 왔으나, 적자로 인해 세액 공제 혜택을 아직 받지 못했다. 

이처럼 지원의 격차가 벌어지는 동안 중국 배터리 산업은 압도적인 성장을 이어갔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CATL, BYD 등 주요 기업들은 빠르게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생산 규모를 확대했다. 그 결과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과 BYD의 합산 점유율은 2020년 30.7%에서 올해 1~4월 기준 55.4%로 급등했다. 반면 2020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34.7%를 차지했던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올해 1~4월 기준 17.9%로 반토막났다.

중국 배터리 업계는 저렴한 인건비와 탄탄한 내수시장, 여기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생산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이를 바탕으로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등 ‘가성비’ 중심의 중저가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중국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CATL은 2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 ‘낙스트라’를 공개하고 연내 양산을 예고했다. 나트륨 배터리는 리튬 대비 원재료가 싸고 희소금속 의존도가 낮아 가격 경쟁력이 훨씬 높다. BYD도 5분 충전으로 400㎞를 주행할 수 있는 초급속 충전 기술을 선보였고 샤오미는 전고체 배터리 특허까지 출원하며 본격적인 차세대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가성비’에 더해 ‘기술력’까지 빠르게 무장하며, 단순히 저가 배터리만이 아닌 프리미엄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K-배터리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배터리는 단순히 전기차에만 들어가는 부품이 아니다. 스마트폰, 노트북, 무선 이어폰 같은 생활 필수품은 물론이고, 전기자전거, 드론, ESS(에너지 저장장치)까지 우리의 일상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최근 급성장 중인 AI 서버, 데이터센터, 로봇, UAM(도심항공모빌리티) 같은 미래 산업에서도 배터리는 핵심 '기반 기술'이다.

다행히 신정부 출범 이후 움직임은 있다.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는 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국내생산촉진 세제’, 이른바 ‘한국판 IRA’ 이행 계획을 보고받았다. 글로벌 관세 전쟁 속에서 주요 산업의 국내 생산을 유도하고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한 세제 지원책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국내생산촉진 세제는 기존 투자세액공제와 별도로 생산량에 비례해 세금을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배터리 등 국가 전략 산업이 대상이다. 정부는 연구용역과 법제화 절차를 거쳐 늦어도 내년까지 입법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R&D 예산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지금 이 시점은 명백히 골든타임이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초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배터리는 단순한 한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미래 제조업, 첨단산업, 국가 경쟁력 전반이 걸려 있다. 머뭇거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격차가 굳어질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빠른 결단과 강력한 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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