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소상공인, 유통업계 모두 피해...정치의 시계만 거꾸로
헌재는 합헌이라 했지만...시대는 이미 온라인으로 움직였다
공휴일 고정 추진에 유통업계 반발...전통시장 매출도 늘지 않아

중앙이코노미뉴스 윤남웅 기자
중앙이코노미뉴스 윤남웅 기자

[중앙이코노미뉴스 윤남웅] "마트를 주로 주말에 가는데 일요일마다 쉰다면 어떡하라는 건가요?"

대형마트(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의무휴업일이 다시 공휴일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면서 소비자들로부터 나오는 대표적인 불만의 목소리다. 

2013년 도입 이후 13년째를 맞은 해당 제도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논의되면서 유통업계를 둘러싼 논란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고 있다.

정부·여당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해 대형마트 휴무일을 ‘공휴일’로 고정하고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자율 지정 권한을 없애겠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유통업계는 “시대 역행”이라며 반발하고 있으며, 정치권 내에서도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전국 대부분의 대형마트는 지자체 판단에 따라 둘째·넷째 주 평일 중 하루를 의무휴업일로 지정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였던 2013년에는 공휴일(일요일)을 기준으로 월 2회 쉬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이후 자치권이 확대되며 소비자 편의를 고려해 상당수 매장이 평일로 옮겨갔다. 그동안 지역 마트마다 한달에 두번 평일을 포함 쉬는 날을 정해왔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공휴일 고정’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는 공휴일 의무휴업을 법제화하겠다는 내용을 ‘20대 민생의제’에 포함시켰고 같은 당 오세희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일을 공휴일로 고정하는 법안을 우리 당이 반드시 처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돼 심사 중이다.

한마디로 일요일마다 마트 휴무일을 고정시키겠다는 얘기다.

현재 해당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돼 심사 중이다.

‘공휴일 휴업’이 소상공인을 보호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이견이 존재한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일요일 등 공휴일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는 전통시장 대신 온라인 쇼핑으로 이동한다고 주장한다. 가뜩이나 여름이라 날씨도 더운데 일요일마다 전통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사실 대형마트 규제의 법적 정당성은 한 차례 헌법재판소에서 다뤄진 바 있다. 2016년 이마트 등 대형마트 7개사는 “영업 제한은 직업 수행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대형 유통업체의 독과점에 의한 거래질서 왜곡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유통 환경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AI 예측, 스마트 매장, 무인화 등 기술 변화는 물론, 소비 패턴 자체가 모바일 중심으로 완전히 이동했다. 여전히 대형마트만 규제 대상으로 삼는 방식이 타당한지 의문이 커지는 이유다.

문제는 이 정책이 통과될 경우 발생할 부작용들이다. 

첫번째로 소비자가 겪을 불편이다. 마트를 주말이나 공휴일에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는 여름철에 오히려 이용 기회가 줄어들어 불편이 커진다. 특히 맞벌이 가정이나 주중 장보기가 어려운 고객층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안그래도 생존위기에 몰린 대형마트들의 어려움 가중이다. 평일에도 손님이 몰리지 않는 구조에서 공휴일까지 문을 닫게 되면, 이미 이커머스에 밀리고 있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경쟁력은 더 약화된다. 이는 결국 쿠팡, 마켓컬리, 네이버쇼핑 등 온라인 플랫폼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2년 공휴일 기준 휴업 제도 시행 이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매출이 감소한 바 있다. 유통 규제가 오히려 쿠팡, 마켓컬리 등 온라인 유통 기업에 반사이익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세번째는 마트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이 입을 피해다. 대형마트 안에서 영업하는 안경점, 제과점, 약국 등 중소상공인들은 대형마트 전체 휴무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다. 특히 평일보다 매출이 높은 주말 영업을 놓칠 경우 생계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현행 월 2회 평일 휴무 기준에서도 입점 소상공인의 매출 손실은 크다. 만약 공휴일 의무휴업으로 전환될 경우 소상공인 입장에선 월 4회 휴무가 돼 2영업일을 더 잃게 되는 셈이다. 

또다시 규제 카드를 내세운 정부에 대형마트 업계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는 장만 보는 곳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생활공간이 됐다”며 “공휴일 규제가 다시 강화되면 고객 불편은 물론, 협력사 납품 일정과 물류 운영에도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대형마트 규제를 강화해도 소비자는 전통시장으로 가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이 실질적인 수혜를 입는다”며 “이런 구조에서 오히려 피해를 보는 건 마트 안에서 장사하는 약국, 안경점, 제빵점 등 소상공인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논란은 결국 정책이 ‘현장’이 아닌 ‘정치’ 중심으로 설계될 때 어떤 부작용이 빚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소비자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대형마트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장을 보는 것을 넘어 외식, 쇼핑, 아이들과의 외출까지 겸하는 생활 공간이 된 지 오래다. 정치가 유통 현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그 공백을 메우는 건 결국 소비자의 불편이다.

대형마트를 쉬게 해도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으로 가지 않는다. 규제의 당위성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 점포, 전통시장, 온라인 모두를 아우르는 균형 있는 유통정책 설계다.

저작권자 © 중앙이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