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은 한양의 중심을 흐르는 청계천 정비를 통해 홍수와 침수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흙다리를 돌다리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광통교 건설을 시작했다. 돌다리 건설에 쓰인 돌은 정릉의 석물들이다. 

정릉은 태조의 계비이자 태종의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이다.

신덕왕후는 자신의 아들인 방석을 세자로 추대했고 이방원이 이에 반발하여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왕위에 오른 후 신덕왕후의 묘를 훼손하고, 정릉을 이장한 후, 정릉의 여러 석물들을 가져와 광통교를 건설하는데 사용했다. 

광통교 건설에 정릉의 석물을 이용한 것은 정적을 견제하고 그들의 흔적을 지우고 권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의미를 담은 상징적인 행위로 해석된다.

일부 설화에 따르면, 태종은 신덕왕후와의 좋지 않은 감정 때문에 정릉의 돌을 가져와 백성들이 밟게 했고, 돌을 거꾸로 세웠다고 한다. 

다만 이는 조선왕조실록 등 공식 기록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은, 구전설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처럼 태종의 청계천 광통교 건설은 단순한 치수 사업을 넘어, 정치적 상징성을 가진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정릉은 이후 현종 때 다시 복원되어 오늘날의 위치, 성북구에 자리잡게 되었다.

<출처 : 유튜브 채널 '이야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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