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인 가천대학교 겸임교수(행정학박사)
2020년 세계경제포럼(WEF)은 AI의 파괴력을 두고 ‘인류가 불이나 전기를 발명한 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언은 5년도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닌, 스마트폰 속 비서로,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조력자로, 때로는 창작의 파트너로 우리 곁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우리는 인류사적 대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손에 쥐어진 이 '새로운 불'은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선물하는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화마(火魔)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모든 것이 급변하는 이 시기, 가장 시급하게 요구되는 역량이 바로 'AI 리터러시(AI Literacy)'다.
그렇다면 AI 리터러시란 무엇인가? 좀 더 들어가 보자.
많은 이들이 AI 리터러시를 '코딩 능력'이나 'AI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 정도로 오해한다. 그러나 이는 AI 리터러시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AI 리터러시란, 'AI 기술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며,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나아가 AI를 활용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역량'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쓰는 법'을 넘어, AI라는 새로운 '언어'를 이해하고, 그 언어로 '소통'하며, 그 언어가 가진 '함의'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이 거대한 역량은 보통 네 가지 세부적인 기둥으로 나뉜다.
첫째, '이해(Understanding)'의 영역이다.
이는 AI가 마법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AI가 데이터(학습 자료)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확률적 모델이며, 때문에 완벽하지 않고 편향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가령 생성형 AI가 그럴싸한 거짓말, ‘세종대왕이 노트북을 들고 광화문을 걷고 있다’와 같은 '환각(Hallucination)'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그 원리의 본질(다음에 올 확률이 높은 단어를 예측하는 것)에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 '활용(Application)'의 영역이다.
이는 AI를 일상과 업무에 실질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넘어, 명확하고 구체적인 '프롬프트(지시어)'를 설계하여 원하는 최상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기술이다. 리포트의 초안을 잡게 하거나, 복잡한 데이터의 패턴을 분석하게 하는 등, 자신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파트너로 AI를 활용하는 단계다.
셋째, '문제해결(Problem-Solving)'의 영역이다.
이는 '활용'에서 한 단계 나아간 전략적 역량이다. 자신이 직면한 복잡한 문제를 인지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AI를 '어떻게' 도입할지 기획하는 능력이다. AI를 단순 검색 엔진이 아니라, 문제 해결 프로세스의 일부로 통합하는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비판적 평가(Critical Evaluation)'의 영역이다.
AI 리터러시의 핵심이자, 인간 고유의 영역이 바로 여기에 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의 진위(Fact-check)를 판별하고, 그 안에 숨겨진 편향성(Bias)은 없는지, 그리고 이 결과물을 사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Ethics)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AI는 '답변'을 하지만, 그 답변의 '가치'와 '책임'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 리터러시,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닌 '없으면 위험한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한 중소기업 마케터가 신제품 홍보 전략을 짜기 위해 AI를 활용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해: "AI는 최신 시장 트렌드 데이터를 분석하고, 타깃 고객층에 맞는 광고 문구를 생성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을 안다.
활용: AI에게 최근 3년간의 경쟁사 데이터를 요약하게 하고,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10가지 광고 슬로건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한다.
문제해결: AI가 제안한 슬로건 중 A, B안을 뽑아 실제 A/B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다시 AI에 입력하여 어떤 키워드가 고객 반응을 더 이끌어냈는지 분석해 다음 캠페인을 최적화한다.
비판적 평가: AI가 생성한 이미지 광고 시안이 특정 인종이나 성별에 편중된 것을 발견한다. "혹시 AI가 학습한 데이터 자체가 편향된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즉각 수정 지시를 내려 잠재적인 차별 논란을 사전에 방지한다.
만약 이 마케터에게 '비판적 평가' 역량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AI가 제안한 편향된 광고를 그대로 사용해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을지도 모른다.
AI 리터러시의 부재는 이처럼 개인의 경쟁력 저하를 넘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 AI가 생성한 가짜뉴스(딥페이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AI 알고리즘이 부추기는 확증편향에 갇히게 된다. 기술을 다루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AI 격차(AI Divide)'는 과거의 그 어떤 격차보다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AI 리터러시는 교육이 가장 필요한 대상은 누구일까?
코딩을 배우는 학생들일까? 아니다. 가장 시급한 대상은 바로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기성세대와 의사결정권자들'이다.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교사와 학부모가 AI를 '금지'의 대상으로만 본다면, 아이들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없이 왜곡된 AI 활용법을 배울 것이다.
기업의 중간 관리자와 CEO가 AI 리터러시 없이 "AI 도입하라"는 지시만 내린다면, 그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낭비하고 윤리적 재앙을 맞이할 수 있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정책 입안자들이 AI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낡은 규제 혹은 미래를 가로막는 과잉 규제로 국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다.
불을 다루는 법을 배운 인류가 문명을 꽃피웠듯, 우리도 이제 AI라는 새로운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AI 리터러시는 21세기의 '읽기'와 '쓰기'이며, 이 새로운 문명을 살아갈 생존의 언어다. 이 언어를 습득하는 데 골든타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