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민영화, 부도덕한 리더…우리금융 지배구조 '취약'
'3연임' KB 윤종규 회장, 장기집권 비판에도 모범적 지배구조 구축 성과
임종룡 회장, 우리금융 재건 의지 '진심'…3년 임기로는 부족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그래픽=중앙이코노미뉴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그래픽=중앙이코노미뉴스]

[중앙이코노미뉴스 정재혁] 전직 회장이 직접 연루된 수 백억원대 '불법대출' 사건 발생 이후 사태 수습에 여념이 없는 우리금융그룹에 '외풍(外風)'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정국 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조기대선 실시에 따른 정권교체 가능성마저 커지면서 금융권 인사들이 여야 어디에서 줄을 댈 것인지 벌써부터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금융 사기업 중에서도 최고의 요직으로 손꼽히는 만큼, 금융권 전‧현직 인사들의 관심도가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한다. 이미 일부 유력 인사가 정치권을 등에 업고 차기 회장 자리를 노린다는 소문이 금융권 내 파다하게 퍼져 있는 상태다. 


늦은 민영화, 부도덕한 리더…우리금융 지배구조 '취약'


우리은행 부당대출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
우리은행 부당대출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

금융사가 외풍에 시달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4대 금융지주사 중 유독 우리금융이 타깃으로 지목당하는 이유는 그만큼 지배구조가 타사 대비 취약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과거 이명박 정권 실세인 '금융권 4대 천왕(강만수‧어윤대‧이팔성‧김승유)' 시기를 거치면서 외풍에 대해 어느 정도 예방주사를 맞았으나, 우리금융은 정부가 오랜 기간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정부나 정치권의 속박에서 한동안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런 한계점에 더해 2016년 우리은행의 숙원인 민영화를 이끈 이광구 전 은행장이 지주사 전환 작업이 한창이던 2017년 채용비리 사태로 낙마했고, 어부지리 격으로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오른 손태승 전 회장은 현 정부 들어 3연임에 도전하다가 금융당국의 사퇴 압박에 못 이겨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손 전 회장이 재임 시기 친인척 및 임직원들이 연루된 700억원대 불법대출 범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것은 임종룡 현 회장이 취임한 뒤에 드러난 사실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손 전 회장은 내부 출신으로 회장 연임에 성공한 인물임에도 내부 결속을 다지고 조직을 외부로부터 지켜낼 만한 리더는 아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종합하면 민영화가 늦었다는 구조적 한계와 더불어 부도덕한 리더의 존재가 우리금융의 건실한 지배구조 확립을 저해한 주요인들인 셈이다. 따라서 금융관료 출신의 외부 인사인 임종룡 회장이 취임 당시 '관치'나 '모피아' 논란에 휩싸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외부에서 적절한 구원투수를 영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3연임' KB 윤종규 회장, 장기집권 비판에도 모범적 지배구조 구축 성과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사진=KB금융그룹]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 [사진=KB금융그룹]

지금은 매우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KB금융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외풍에 시달리는 가장 대표적인 금융사로 거론됐다. 

이명박 정권 시기 '금융 4대 천왕' 중 한 명인 어윤대 회장이 물러난 뒤에도 금융 관료 출신인 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제2차관이 지주 회장에 등극한 바 있다. 임 전 회장은 마찬가지 박근혜 정부 측 인사로 평가받던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과 주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대립하며 'KB 사태'를 촉발시켰고, 결국 두 사람 모두 불명예 퇴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내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이 바로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이다. 윤 전 회장은 회계법인 소속이던 2002년 국민은행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되며 KB와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여러 차례 사퇴와 재입사를 반복하다 2014년 KB금융지주 4대 회장 자리에 올랐다.

윤 전 회장은 'KB 사태' 여파로 내부가 어수선한 가운데 KB국민은행장을 겸직하며 경영실적과 조직관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회장 취임 이후 3년 만에 KB금융의 당기순이익이 2배 올랐고, 취임 7년차인 2020년엔 신한금융을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다.

경영실적과 더불어 윤 전 회장의 뛰어난 성과를 거론되는 것은 내부통합이다. KB국민은행은 2001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 이래로 두 은행 출신들 간 파벌 싸움이 끊이질 않았는데, 윤 회장 취임 이후 파벌 싸움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특히 은행장 겸직을 해제하면서 새 은행장으로 장기신용은행 출신인 허인 전 KB금융 부회장을 발탁한 것도 내부 다툼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다.

윤 전 회장이 9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KB금융의 지배구조는 보다 단단해졌다.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했으며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후계 양성 프로그램 구축에 성공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은행 행원으로 입사한 내부 출신 양종희 현 KB금융 회장이 수장 자리에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외풍에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KB금융이 10여 년 만에 가장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한 금융지주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윤 전 회장은 재임 내내 '장기집권' 비판을 받았음에도 별다른 구설수 없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아름다운 퇴장'을 이뤄낸 몇 안 되는 인물로 손꼽힌다.


임종룡 회장, 우리금융 재건 의지 '진심'…3년 임기로는 부족하다


지난 1월 3일 우리은행 본점에서 (사진 왼쪽부터)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강원 상업은행 동우회장, 유중근 한일은행 동우회장,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양 동우회 통합 추진 MOU를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우리은행]
지난 1월 3일 우리은행 본점에서 (사진 왼쪽부터)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강원 상업은행 동우회장, 유중근 한일은행 동우회장,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양 동우회 통합 추진 MOU를 맺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우리은행]

비록 출신은 다르지만, 임종룡 회장에게 주어진 역할은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혼란한 시기 외부에서 들어온 점, 조직 내 파벌(한일‧상업) 갈등이 심각하다는 점, 부진한 경영실적으로 기업 위상과 직원들 사기가 떨어져 있다는 점 등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가 윤 전 회장이 KB금융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와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3월 취임한 임 회장은 임기 1년을 남겨둔 현 시점에서 이미 상당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초기 '한일‧상업은행 출신 간 파벌 싸움 해소'를 주된 목표로 제시했으며, '기업문화혁신TF'를 설치해 임직원들의 화학적 통합을 위해 힘써 왔다. 그 결과 올해 초 50년 이상 각각 운영돼 온 상업‧한일 퇴직직원 동우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임 회장은 조직 내 뿌리 깊게 박힌 계파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역대 은행장들을 직접 만나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발생한 각종 금융사고와 전직 회장이 연루된 불법대출 등에 책임을 통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프로세스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원 친인척 관련 부당한 대출을 방지하기 위해 '임원 친인척 개인(신용)정보 등록제' 가동했으며, 지난해 12월엔 윤리경영실을 신설해 외부 법률전문가를 수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부진한 경영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책으로 비은행 계열사 강화를 천명하고, M&A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지난해 5월 한국포스증권을 인수해 우리종합금융과 합병하고 우리투자증권을 출범시켰고, 보험사인 동양‧ABL생명 인수도 목전에 두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임기 2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임 회장이 우리금융 재건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을 듯하다. 다만, 현재 추진 중인 많은 일들이 회장 교체 시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정권 교체 가능성에 더해 외부 인사가 차기 우리금융 회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현재 진행 중인 조직 내 혁신 작업이 자칫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KB금융을 살리기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윤종규 전 회장이 임무를 모두 완수하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9년'이다. 임종룡 회장이 우리금융 재건에 진심을 보인 만큼, 그에게도 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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