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일 전 예원예대 객원교수, 노사분쟁 ADR 전문가

문병일 전 예원예대 객원교수. 노사분쟁 ADR(대안적 분쟁해결) 전문가
문병일 전 예원예대 객원교수. 노사분쟁 ADR(대안적 분쟁해결) 전문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은행들에는 어김없이 연말 인사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한 해의 성과를 정리하고, 조직의 명운을 짊어질 새로운 리더를 세우는 시기이다. 그러나 해마다 이 풍경을 지켜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한 가지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왜 유능한 여성 지점장들은 영업본부장이라는 다음 문턱을 넘지 못하는가.

은행의 영업 현장에 여성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고객과 맞닿는 창구, 여신창구, PB업무, 내부 관리까지, 그들의 섬세함과 책임감 없이는 하루도 조직이 굴러가기 어렵다. 많은 여성 직원들이 오랜 시간 스스로 유리벽을 깨뜨리며 ‘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금의 여성 지점장 비율은 결코 시혜나 배려의 결과가 아니다. 철저히 공정한 경쟁 속에서 쌓아 올린 노력의 성과다.

하지만 그 위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점장 이후의 길, 즉 영업본부장과 임원으로 이어지는 승진의 사다리 앞에는 여전히 단단한 벽이 버티고 있다. 여성 지점장이 일정 비율을 차지하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이제 그 이상의 도약도 당연히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또 묻는다. “언제까지 우리는 여성 지점장이 본부장이 되는 모습을 ‘특별한 일’로 기다려야 하는가.”

문제는 능력이 아니다. 현장에서 이미 실적과 리더십으로 검증된 여성 리더들이 더 이상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는, 평가와 기회의 구조가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본부 경험이 부족하다’, ‘수십개의 영업점을 관리하는 것은 아직 남성이 유리하다’는 말이 그럴듯한 명분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공정하지 못한 평가 기준과 폐쇄적인 인사 네트워크가 숨어 있다. 남성 중심의 관행과 카르텔이 은밀하게 작동하는 한, 유리천장은 결코 깨지지 않는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한 형평성의 영역을 넘어섰다. 조직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디지털 전환과 소비자 중심 경영, ESG 등으로 은행 산업이 급격히 재편되는 지금, 단일한 시각으로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직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시각과 경험이 경영에 반영될 때, 조직은 비로소 진짜 혁신의 숨통을 틀 수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두 명의 상징적 인사로 ‘구색’을 맞추는 일이 아니다. 판을 바꾸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여성 지점장들이 영업본부장으로 자연스럽게 승진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승진 기준을 오직 성과 중심으로 투명하게 정비하고, 본부 핵심 부서 순환근무나 차세대 리더 육성 프로그램에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두어서는 않된다. ‘기회는 공평하고, 결과는 노력으로 증명된다’는 기본 원칙이 작동할 때, 조직의 신뢰도 함께 높아진다.

연말 인사는 단순한 인사이동이 아니다. 그 조직이 무엇을 가치로 두고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변화를 외면하는 조직은 결국 인재를 잃고, 시장의 신뢰마저 잃는다.

이제 은행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여성 지점장을 여전히 ‘유능한 실무자’로만 둘 것인가, 아니면 ‘조직의 미래를 함께 설계할 리더’로 세울 것인가. 올해 연말 인사에서 내려질 그들의 대답이, 대한민국 은행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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