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한샘·락앤락...사모펀드에 흔들린 기업들 사례 집중 분석
차입매수(LBO)의 폐해와 단기수익 중심 경영이 가져온 부작용
사모펀드 규제 강화 필요성 커져..."투명성·책임성 제고해야"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영 정상화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단기 수익 중심의 접근과 무리한 차입 구조,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속세를 3~4번 치르면 기업이 사실상 국가에 귀속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사모펀드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본지는 창간특집을 통해 사모펀드의 국내 기업 인수 사례를 성공과 실패 측면에서 짚고, 이를 둘러싼 여론과 정책 대응, 향후 시장 전망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4회에 걸쳐 균형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앙이코노미뉴스 윤남웅] 사모펀드(PEF)는 기업가치를 높여 일정 기간 후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다. 원론적으로는 건전한 자본 공급자이자 경영 정상화 조력자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국내 여러 기업들이 사모펀드에 인수된 후 오히려 경영 위기에 직면하거나 파산 위기로 몰리고 있다. ‘기업 사냥꾼’, ‘먹튀 자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MBK파트너스 등 대형 사모펀드가 벌인 인수 이후의 후폭풍은 한국 산업 전반에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MBK파트너스 경영실패가 부른 홈플러스의 몰락
MBK의 경영 실패 사례로 대표적인 것이 홈플러스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인 심각한 사안이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약 7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LBO(차입매수)였으며 전체 인수금의 70% 이상을 부채로 충당했다. MBK 는 홈플러스 매입과정에서, 홈플러스가 7조 2천억원의 빚을 떠안고 출발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차입매수 (LBO -leveraged Buyout)이다. MBK가 홈플러스 전신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2조 7천억원을 빌렸다. 나머지 3조 2천억원은 펀드 및 투자자 몫이었다.
이후 홈플러스가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은 이자 상환과 배당금 지급으로 빠져나갔다.
문제는 인수 이후의 경영 전략이었다. MBK는 홈플러스의 유통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는 부동산 매각과 구조조정에 집중했다.
인수 직후, 2016년 가좌, 김포, 김해, 동대문, 북수원 점포를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back)으로 전환해 홈플러스 임대비용 부담을 증가시켰다. MBK가 보유 점포 건물을 매각해, 2조 7000억원을 인수-차입금으로 사용했다. 시설좋은 목천물류센터를 매각했다. 이 곳은 물류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곳이었는데 현재는 쿠팡이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동시에 임대료 부담이 커졌다. 126개 매장 중, 65곳이 임대매장이었고, 2023년 1년 리스부채가 4516억원에 달하게 됐다.
전국 주요 점포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폐점됐고, 대규모 인력 감축이 단행되면서 조직은 급속히 위축됐다. 단기 수익은 얻었지만, 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은 무너졌고, 결국 홈플러스는 2025년 5월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5년전 출구전략에 실패한 사모펀드 MBK는 10년이 되는 시기에 다시 한번 출구전략을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 지난 10년간 매각하지 못한 홈플러스를, 직원들의 의지와는 별개로 오로지 투자회수금을 위해 쪼개서 판매할 것을 결정했다.
최근에는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MBK의 부도덕한 기업 운영 방식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홈플러스와 MBK 경영진이 신용등급 하락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를 숨긴 채 단기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떠넘기려 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실제로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2025년 2월 28일 홈플러스의 기업어음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홈플러스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홈플러스와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전국 매장 126곳 중 36곳을 폐점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무더기 폐점으로 인한 실업자 규모가 33만명, 사회·경제적 손실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경제점검 TF 회의 의제로 홈플러스 사태를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진행 중인 홈플러스가 최악의 경우 대규모 폐점으로 이어지면 우리 경제와 민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비상경제점검 TF 회의에서 홈플러스 사태를 다룰 경우 홈플러스와 MBK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앞두고 잠잠해졌던 김병주 MBK 회장 청문회 요구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엔지니어링, 네파, 딜라이브, 메디트, 오스템임플란트 등 MBK 경영실패 사례 '무더기'
홈플러스 외에도 MBK가 인수한 국내 기업들의 경영 악화는 반복됐다.
2009년 인수한 기술중심 기업 영화엔지니어링은 무리한 해외 플랜트 수주로 경영난에 빠져 2016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MBK는 10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사실상 손실 처리했고, 직원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었다. 이후 2017년 회사를 496억원에 매각하며 MBK의 기술기업 투자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2013년 MBK가 약 9970억원에 인수했지만, 이후 업황 악화와 브랜드 경쟁력 저하로 매출은 급감했다. 투자 회수(엑시트) 시도는 10년 이상 실패하며 대표적인 투자 실패 사례가 됐다.
2008년 인수한 케이블TV 업체 딜라이브도 IPTV 등 시장 변화 대응 실패로 가입자 급감과 수익 악화를 겪고 있다. 지속된 매각 시도가 무산되며 ‘좀비기업’으로 존속 중이다.
메디트 역시 MBK가 2022년 고점에 약 2조4250억원을 들여 인수했으나, 직후부터 실적이 급락했고 결국 적자 전환했다. 현재까지 엑시트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태다.
MBK는 그동안 인수 기업의 거버넌스 개혁을 주장해왔으나 실상은 고배당을 통해 기업의 현금을 빠르게 회수하는 데 집중해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2023년 MBK에 인수된 이후 1001억원 규모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는데 이는 해당 연도 순이익 535억원의 약 189.9%에 해당하는 규모다. 매출과 순이익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고배당이 강행되며 재무 건전성이 흔들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메디트 역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899억원에 달하는 배당을 집행했다. MBK가 이처럼 실적과 무관하게 투자금 회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MBK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인수전에도 공격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김광일 MBK 부회장을 고려아연 사외이사로 선임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 부회장은 홈플러스 사태의 핵심 인물임에도 현재 20곳이 넘는 기업에서 이사 혹은 고문직을 맡고 있다. 김 부회장은 슈퍼카 수십 대를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부실 경영 와중에 호화 생활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다.
김병주 MBK 회장은 홈플러스 사태 이후 해외에 체류하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 논란도 커지고 있다. MBK가 한국 사회에서 '먹튀 자본'의 대표 격으로 불리는 배경에는 이처럼 반복되는 단기 수익 중심의 경영 방식과 도덕적 해이가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샘, 락앤락 등도 사모펀드 인수 후 사세 추락...'단기 수익 회수'가 기업을 절망으로
IMM프라이빗에쿼티가 2021년 인수한 한샘은 국내 홈 인테리어 업계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 기업이었다. 하지만 IMM 인수 후 시장 대응이 늦어졌고, 팬데믹 이후 인테리어 수요 둔화에 따른 급격한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대규모 구조조정과 매장 폐쇄가 이어졌고 신제품 출시 등 전략적 투자는 축소됐다. 결국 2022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경영진 교체와 긴급 자금 수혈에도 불구하고 재무적 안정성 회복에는 실패했다.
IMM의 전략이 명확한 장기 성장 로드맵보다 비용 절감 위주의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까지도 시장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2017년 인수한 락앤락은 당시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가진 생활용품 업체였다. 창업주의 상속세 부담 해소를 위해 어피니티가 투입한 자금이 초기에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이후 전략적 부재와 과도한 배당 요구로 인한 현금 유출로 기업이 재정적으로 불안정해졌다.
특히 중국 등 주요 해외 시장에서의 브랜드 관리 실패로 점유율이 급락했고, 국내에서는 경쟁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 확보에도 실패했다. 결국 2023년 상장 폐지됐으며, 사모펀드의 단기적 수익회수 압박이 기업의 장기적 성장 기회를 막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모펀드 경영 실패 사례는 단순히 경영 역량 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단기 수익 회수’에 초점을 맞춘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기업의 본질적 경쟁력을 강화하기보다 부동산 매각, 구조조정, 고배당 등 단기 수익 극대화 전략만을 우선시한 결과다.
특히 차입을 통한 인수(LBO)는 부채비율을 높여 임직원의 구조조정과 소비자 서비스 축소로 이어진다. 사모펀드는 수익을 얻고 빠져나가지만, 남은 부채와 고통은 기업과 사회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무분별한 기업 인수와 경영 실패가 반복되면서 제도적 규제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사모펀드 운용 투명성을 강화하고, LBO 방식의 부채 활용 제한, 산업 보호 차원의 외국계 자본 규제 등 실질적 장치가 요구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기업을 단지 ‘수익 창출 수단’으로만 보고 있다”며 “건강한 인수합병 시장을 위해 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방향의 투자와 장기적 책임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