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꽂는 조력자”...공룡 사모펀드의 무차별 기업 공격
상속세 유지, 상법개정안 통과 등 앞으로가 더 세질 사모펀드 파워
'기업은 남고, 기업가 정신은 사라지는' 사모펀드 시대가 올까 두렵다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영 정상화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단기 수익 중심의 접근과 무리한 차입 구조,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속세를 3~4번 치르면 기업이 사실상 국가에 귀속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사모펀드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본지는 창간특집을 통해 사모펀드의 국내 기업 인수 사례를 성공과 실패 측면에서 짚고, 이를 둘러싼 여론과 정책 대응, 향후 시장 전망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4회에 걸쳐 균형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앞선 연재에서 살펴봤듯이 사모펀드는 국내 기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양면의 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모펀드가 책임감을 갖고 기업을 인수해 부활에 성공시키고 제값에 매각을 하는 구조라면 사모펀드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홈플러스 사태에서 봤듯이 최근 들어서는 기업 사냥꾼 이미지가 훨씬 더 부각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위기 기업을 회생시키는 투자자로 환영받던 사모펀드가, 이제는 경영권을 위협하고 기업가 정신을 파괴하는 ‘사냥꾼’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최근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펀드와 행동주의 펀드들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대기업 오너 일가조차 방어에 실패하거나, 고려아연 사태처럼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더욱 거세지는 흐름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 비율이 유지되는 가운데 정권 교체로 상법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사모펀드의 노골적인 기업사냥이 본격화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모펀드가 '구조조정 파트너'에서 '지배자'로 진화하는 지금, 한국 기업들의 운명이 어디로 흘러갈지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칼 꽂는 조력자”…공룡 사모펀드의 무차별 기업 공격


사모펀드의 기업사냥꾼 면모가 강조되는 흐름은 현실 속 다수의 기업에서 이미 전개되고 있다.

한국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옛 한국타이어)의 상장 유통지분을 공개매수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기존 최대주주인 조현범 회장을 정면으로 겨냥한 경영권 공격이었다.

비록 공개매수는 실패했지만, 이 시도를 통해 “MBK와 같은 바이아웃 펀드도 언제든 기존 경영진에 등을 돌리고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인식이 재계 전반에 퍼졌다.

동시에 행동주의 펀드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소액주주와 손잡고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이사 교체 등 주주가치를 앞세운 경영 개입이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이들이 '아군'이 아닌, 오히려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강적’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업체 고려아연은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손을 잡으며 경영권 사태에 휘말린 상태다.

MBK, 영풍이 고려아연보다 지분 경쟁에서 6% 이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업계에서는 “결국 고려아연도 MBK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홈플러스 경영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MBK가 개입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고려아연이 사모펀드에 넘어가면 국내 산업과 공급망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금호석유화학도 '조카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4년간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 장남이자 박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가 사모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손잡고 경영권 분쟁을 촉발해 '조카의 난'이 이어졌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박철완 전 상무 측이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줄이고, 관련 소송에서도 패하면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됐다고 평가하고 있지만 사모펀드의 경영권 분쟁 개입의 대표 사례로 남았다. 

태광산업의 경우, 트러스톤자산운용이 2대 주주로서 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경영 참여를 선언하며 경영진과의 충돌을 예고한 상황이다. 지난 3월 트러스톤은 공개주주 서한을 통해 이호진 태광산업 전 회장의 등기임원 선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할 것을 태광산업에 정식으로 요청하는가 하면,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까지 추진 중이다. 

콜마홀딩스의 경우 지난 3월 14일 대주주인 사모펀드 달튼인베스트먼트(달튼)가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해 긴장감이 고조됐다. 달튼은 지분율 기존 5.02%에서 5.69%로 확대됐다고 밝히며 3월 31일 콜마홀딩스 정기 주총에 임성윤 달튼 대표를 기타비상무이사로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KT&G·삼양그룹·현대엘리베이터·7대 금융지주 등은 국내에서 성장한 행동주의 펀드들로부터 “주주 환원을 늘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은 5곳 이상의 펀드들이 연합해 경영진 압박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는 사업분할 또는 배당 확대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전개는 단순한 경영진 교체를 넘어서 기업의 비전, 철학, 성장 전략 자체가 외부 자본인 사모펀드의 손에 휘둘릴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상속세 유지, 상법개정안 통과 등 앞으로가 더 세질 사모펀드 파워


앞으로가 더 문제다. 사모펀드의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는 상속세가 깊게 연관돼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최대 60%)을 유지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오너 경영자들이 이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기업 매각을 선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샘이다. 오랜 기간 가족경영을 유지해오던 한샘은 조창걸 명예회장의 고령화와 막대한 상속세 부담 문제에 직면했고, 결국 2021년 MBK파트너스에 경영권을 넘기게 됐다. 한샘의 사례는 “고율 상속세가 기업을 사모펀드에 넘기도록 강제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게임사 넥슨의 경우에도 상속 과정에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한 넥슨그룹 창업자 김정주 회장 유족이 정부에 수조원 규모 지분을 상속세 대신 납부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높은 상속세율로 인해 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2대 주주로 등극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 아래에서는 이러한 상속세 구조가 개편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자산 재분배’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상속세 인하 또는 감면 논의는 정치적으로도 설 자리가 좁다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회사를 팔지 않고서는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기업 승계의 어려움이 사모펀드의 먹잇감을 늘리고, 이는 다시 구조조정과 단기 수익 중심의 경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구조가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사모펀드 업계가 쌓아둔 막대한 드라이파우더(미소진 투자금)까지 겹치면서, 경영권 인수를 시도할 ‘실탄’도 이미 충분하다. 

즉, 사모펀드에 대한 제도적 방어 장치는 취약한 반면, 사모펀드가 기업을 공격할 자금과 명분은 넘치는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국회에서 추진 중인 상법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사모펀드의 기업사냥이 더욱 손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주 중심의 구조를 강화했고, 이재명 정부에서는 현재 국회에서 최우선으로 논의 중인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사모펀드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 명약관화해 보인다. 

상법개정안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은 표면적으로 ‘소액주주 보호’를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지분을 가진 외부 세력들이 지배주주를 견제하고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상법개정안이 외부 세력이 기업 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모펀드들이 이 틈을 이용해 이사회 장악을 시도하거나, 기존 경영진을 흔드는 데에 정당성과 법적 무기까지 갖추게 되는 셈이다.

이로 인해 “주주 이익의 극대화만을 외치는 사모펀드들이 막강한 무기를 갖게 되는 셈”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주 중심의 법제도가 사모펀드에게 경영권 분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제도적 레버리지를 안겨주면서, 향후 한국 기업 생태계는 ‘펀드에 의한, 펀드를 위한 지배구조’로 빠르게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사모펀드는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명분 아래 구조조정, 자산 매각, 비용 축소 등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펼쳐온 만큼, 이 같은 법제도 강화는 ‘기업사냥’을 훨씬 더 쉽게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은 남고, 기업가 정신은 사라지는' 사모펀드 시대가 올까 두렵다


사모펀드들은 투명성·효율성 제고와 주주환원 증가 등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달콤한 말’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함으로 사냥꾼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단기 수익과 자산 매각에 초점을 맞춘 사모펀드식 경영은, 고용 안정성 약화와 장기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는 곧 산업의 경쟁력 저하로 연결된다.

사모펀드는 중동과 다른 국가의 자산가들의 자금을 끌어들여 홈플러스와 같은 기업을 사냥해왔다. ‘쩐주’가 외국인 자본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의 수익 챙기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외국계 사모펀드의 경우 인수한 기업이 가진 핵심기술이 유출될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중국계 사모펀드를 주의해야 한다. 

최환열 삼지회계법인 대표는 “지금처럼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는 전무하고, 기업을 둘러싼 법과 제도가 모두 외부 자본에 유리하게 설계된다면 한국의 산업 기반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사모펀드들은 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시의무 같은 게 없어서 마구잡이 소송 등을 일삼고, 법적 제약 없는 공격으로 기업들을 사냥해왔다”며 “사모펀드의 행태가 그동안 크게 관심을 받지 않았는데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모펀드가 기업을 살린 여러 사례들도 분명 존재한다.

수많은 위기의 기업들이 사모펀드에 인수된 후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시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한 사례도 적지 않다. 사모펀드가 구원자로서 역할을 해온 역사 역시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기업을 옥죄는 정책 환경이 지속되고, 사모펀드에 대한 어떠한 견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모펀드는 괴물이 되어 기업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고, ‘구세주’로 포장된 그들은 결국 한국 경제의 ‘사냥꾼’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단물만 삼키고 뱉는 사모펀드들에 대한 강력한 정부 제재가 필요하다. 기업가치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끌어올릴 유도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이 외국인 쩐주가 주인인 사모펀드의 제물이 될까 두렵다. '기업은 남고, 기업가 정신은 사라지는' 사모펀드 시대가 올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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