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사모펀드 규제 강화 방향은 '투자자 보호'...지금은 '기업 보호'
홈플러스 사태 이후 사모펀드 규제 강화 목소리 커져
사모펀드 감독 강화 및 입법 예고 등 규제 강화 움직임
금융당국, 투자자 보호·시스템 안정성 달성 목표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영 정상화라는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단기 수익 중심의 접근과 무리한 차입 구조,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회피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상속세를 3~4번 치르면 기업이 사실상 국가에 귀속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사모펀드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본지는 창간특집을 통해 사모펀드의 국내 기업 인수 사례를 성공과 실패 측면에서 짚고, 이를 둘러싼 여론과 정책 대응, 향후 시장 전망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4회에 걸쳐 균형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중앙이코노미뉴스 엄현식] 한때 '모험자본의 최전선'으로 불리며 기업의 성장과 구조조정을 이끌었던 사모펀드(PEF)는 최근 잇따른 환매 중단 사태와 경영권 분쟁 논란, 그리고 과도한 단기 수익 추구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모펀드 규제 강화의 필요성이 재차 부각되고 있으며, 사모펀드의 투자 행태에 대한 감독 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사모펀드 규제 강화 방향은 '투자자 보호'...지금은 '기업 보호'


우리나라 사모펀드 시스템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외국과 달리 2004년 정부가 사모펀드 제도를 도입, 사모펀드를 적극 육성하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투자자 범위, 최소 투자 금액, 차입 한도 등 여러 방면에서 지속적으로 사모펀드 규제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2020년 대 들어서야 규제가 시작됐는데 기업타겟은 아니었다. 사모펀드 피해를 막기 위한 규제 강화의 대표적 사례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따른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다. 

지난 2021년 10월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촉발된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및 부실 운용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전격 시행된 지 3년 8개월여가 지난 상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에는 사모펀드가 투자 목적에 따라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이러한 구분을 없애고, 투자자 유형에 따라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재편했다.

과거에는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에 각각 다른 운용 규제가 적용되었으나, 개정 후에는 펀드의 운용 목적에 따른 규제를 폐지하고 모든 사모펀드가 다양한 운용 방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일반 투자자가 참여하는 일반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자 보호 장치를 대폭 강화했다.

이처럼 당시 규제는 이처럼 투자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모펀드 규제 강화 움직임은 기업 인수 후 탈탈 털고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가 뚜렷하다. 

그러나 최근 '홈플러스 사태' 등 사모펀드의 기업 경영권 개입 및 장기적인 기업 가치 훼손 논란이 불거지면서, 기존 규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최근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강화 움직임은 과거 대규모 투자자 손실 사태와 최근 불거진 기업 인수 과정에서의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과거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안전한 고수익'이라는 허울 아래 수조 원 규모의 투자금이 증발해 수많은 개인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본래 전문 투자자만을 대상으로 해야 할 사모펀드가 일반 대중에게 '무늬만 사모펀드' 형태로 불완전 판매된 것이 핵심 문제였다. 이는 사모펀드의 정보 비대칭성과 운용의 불투명성이 낳은 비극으로 기록됐다.

최근에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과도한 레버리지 활용이 다시 한번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5년 홈플러스를 7조 2000억 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홈플러스의 자산을 담보로 한 대규모 차입매수(LBO) 방식을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았고 인수 초기부터 과도한 부채가 홈플러스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월 홈플러스는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했고 법정관리는 2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뿐만 아니라 7000여 개에 이르는 임점 점주들에게도 큰 피해를 전가하게 됐다.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부문 부원장이 지난 4월 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홈플러스·MBK 조사 등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함용일 금감원 자본시장부문 부원장이 지난 4월 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홈플러스·MBK 조사 등 자본시장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차입 한도 제한 입법 발의, 감독·검사 강화 등 사모펀드 규제 강화 움직임


지난 6월 5일 김현정 국회의원은 사모펀드의 무분별한 차입을 억제하고, 인수기업의 재무건전성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사모펀드가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활용해 기업을 인수하고, 이후 배당·자산 매각 등을 통해 빠르게 수익을 회수하는 LBO 구조의 위험성을 해소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김 의원은 "차입인수(LBO) 방식의 과도한 차입이 인수대상 기업에 막대한 이자비용 부담을 안긴다"면서 "자산의 매각, 재무구조 악화 등을 야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상 기업을 파산위험에 빠지게 하는 등 사회적 혼란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사모펀드에 대한 다층적인 규제 강화가 이미 시행되거나 논의 중이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도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국민연금법 △상법  등 사모펀드 규제 3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지난 4월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 MBK 사태의 본질은 기업사냥에 동원된 빚더미를 국민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은 이익만 먹고 튀는 사모펀드의 약탈성이다. 투기 행위를 사전에 막기 위한 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 멀쩡한 기업을 망치고 지역의 협력경제를 파괴하는 사모펀드 약탈행위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이후 추가로 사모펀드 규제를 위해  △근로기준법 △채무자회생법 △외국인투자법 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역시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홈플러스 사태 등에서 불거진 사모펀드(PEF) 문제와 관련해서는 감독·검사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투자 규모, 법규 준수, 사회적 책임 이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사 범위와 수준을 차등화하고 PEF 검사를 연 5개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그간 사모펀드 검사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문제가 있는 곳에 자원을 좀 더 할당해서 진행하겠다"며 "현행법상 사모펀드 검사에 한계가 있는 만큼 공시나 정보 점검 등과 관련해 법 개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사모펀드 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며, 규제 강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투자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법안 시행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지난 3월 6일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향해
지난 3월 6일 홈플러스 노동자들이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향해 "기업회생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 D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중앙이코노미뉴스]

규제 강화 움직임에… "질적 성장"vs "자율성 제약"


현재 추진되거나 논의되고 있는 사모펀드 규제 강화는 장기적으로 사모펀드 시장의 건전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사모펀드의 과도한 차입을 억제하고 인수기업의 재무건전성 훼손을 막아 한국 경제의 질적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에서 보듯 인수 후 기업의 가치를 깎아내린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라며 "전반적으로 기업과 투자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존 정책을 전면 손질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며 "사모펀드 관련해 추진하는 규제는 과거의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고, 보다 책임감 있는 투자와 운용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단기적인 투자 위축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해외 유수 사모펀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모펀드가 기업 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고 국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투자가 이뤄지도록 정부가 법안들을 통해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레버리지 한도 축소 등으로 대규모 M&A가 위축되고 펀드 운용의 자율성이 제약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했던 일부 운용사들은 새로운 투자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모펀드의 기업 사냥 관련 규제는 강화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모펀드에 대한 정보 공개 확대, 사회적 신용의 이용 제한, 노동착취와 자산 수탈 제한 등의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있게 전개될 지가 관건이다. 

임수강 경제학 박사는 ”사모펀드 운용자가 가입자, 운용 현황에 대한 정보의 공개를 지금보다 훨씬 확대해야 하며 사모펀드가 자기자본이 아닌 사회의 신용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행태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의 고용 축소 제한, 회사 핵심 자산 매각 제한 등도 강화해야 한다"며 “무엇보다도 기업 회생절차 악용을 제한하고 고용에 영향을 주는 회사 정책은 노동조합과 사전 협의 의무화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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