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에도 7나노 양산 성공한 화웨이…국내 기업엔 치명타
스마트폰·AI칩·생활가전·통신장비까지…‘대륙의 기술력’은 더 이상 조롱거리가 아니다
과거는 ‘민간 경쟁’, 지금은 ‘국가 대 국가의 산업 전쟁’이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화웨이 사옥 건물 전경.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화웨이 사옥 건물 전경. 

[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우리가 일본을 넘어섰을 때, 중국은 계속 배웠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넘어서는 중이다”

K-산업을 이끌던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의 전방위 압박에 흔들리고 있다. 한때 ‘저렴한 모조품’으로 치부되던 중국 기술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 기술력, 생태계 경쟁력까지 무기로 앞서나가고 있다.

화웨이, 텐센트, BYD, CATL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은 통신장비·게임·전기차·배터리 등 주요 산업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을 정면으로 압박하며 '기술 패권의 중심축'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던 그 구조적 역전이 지금은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이 연재는 ‘한국 기업 옥죄는 중국기업들’이라는 주제 아래, 각 산업별 주요 중국 기업의 성장 과정과 전략, 그리고 이로 인한 한국 산업의 충격과 대응 한계를 짚는다. 대한민국 산업계가 ‘잃어버린 20년’의 경고를 현실로 마주하지 않도록, 지금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를 묻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스마트폰과 가전이 흔들리고, 이제는 반도체와 통신장비까지 위태롭다.

과거 우리가 일본을 밀어냈듯, 이제는 중국이 우리를 밀어내고 있다. 그 선봉에 선 것은 화웨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전방위에서 위협하는 이 중국 기업은 더 이상 ‘가격만 싼 짝퉁 제조사’가 아니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기술 격차를 좁히며, 주요 산업에서 한국 기업들을 정면으로 압박하고 있다.

화웨이는 1987년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엔지니어 런정페이가 창업한 기업이다. 초기엔 교환기 부품 수입업체였지만, 정부의 지원과 민간 군수기술의 융합,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해외 시장에 본격 진출해 중동·아프리카·동남아 시장을 장악했고, 2010년대 들어서는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스마트폰·통신장비 부문에서 급부상했다.

미국 정부가 2019년부터 본격적인 제재에 나선 것도 그 위협을 체감한 결과다. 그런데 그 제재 속에서도 화웨이는 다시 살아났다. 더 강해졌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단순 기업이 아닌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하고 총력 지원했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을 자국 기업(SMIC 등)으로 대체했고, 기술 이전 없이 자체 R&D로 돌아섰으며, 14억이 넘는 내수 시장을 보호막 삼아 수요를 유지했다.

특히 미국 기술을 우회하거나 자체화할 수 있도록 수직계열화에 집중하며 ‘미국 없는 공급망’을 실현했다. 미국의 중국 제재가 되려 화웨이의 기술력을 키워준 결과를 낳게된 셈이다. 중국은 620만 명이 넘는 세계 최대 R&D 인력(한국은 60만명)을 앞세워 기술 자립과 초격차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폰·AI칩·5G 통신장비까지…삼성도 LG도 전방위로 압박


화웨이의 ‘부활’은 스마트폰에서 가장 먼저 드러났다. 2023년 자체 7 나노 AP ‘기린 9000s’를 탑재한 ‘메이트 60 프로’를 선보이며 제재의 벽을 뚫었다.

한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0%를 넘나들던 삼성전자는 현재 0.6%(2024년 4Q)로 추락했고, 화웨이는 애플을 제치고 다시 1위를 탈환했다. 화웨이는 중국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3대 중 1대를 차지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 기관 및 국유기업 입찰에서 독점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황은 심상치 않다. 2024년 4분기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 16%, 애플 23%로 1·2위를 지켰지만, 화웨이는 아직 5% 미만이어서 집계상 ‘Others’에 묶여 있다. 그럼에도 TechInsights 기준 2024년 2Q 화웨이 글로벌 출하량은 1,160만 대로 전년 대비 49% 급증해 약 4% 점유율을 기록, 10위권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세계 최초 3단 폴더블폰 화웨이 메이트XT
세계 최초 3단 폴더블폰 화웨이 메이트XT

화웨이 폴더블 스마트폰 기술력은 이 분야 원조였던 삼성을 위협하는 중이다. 이미 지난해 3단 폴더블폰까지 세계최초로 내놨다. 올 하반기엔 차세대 트리폴드(3단 폴더블) 스마트폰 출시를 예고하며 글로벌 폴더블 시장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화웨이의 신형 트리폴드폰은 기존 모델 대비 프로세서와 카메라 등 핵심 사양이 대폭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AP칩(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칩)과 디스플레이, 카메라, 통신칩,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은 모두 중국산이다.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화웨이는 ‘엔비디아 대항마’로 본격 부상 중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화웨이가 엔비디아 H100에 맞설 신형 AI 칩셋 ‘Ascend 910D’를 시험 개발 중이며, 이르면 5월 첫 샘플이 나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칩은 H100보다 더 강력한 성능을 목표로 설계됐으며, 중국 내 AI 스타트업들과 실현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미국의 반도체 장비 및 기술 수출 제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자체 AI칩 개발에 성공할 경우, 중국의 AI 독립은 물론 한국 기업에도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

화웨이의 기존 AI칩 ‘Ascend 910B’ 역시 성능 면에서 NVIDIA A100급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며, 중국 정부의 AI·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거 채택되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집중하고 있는 HBM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사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5G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화웨이 공세도 한국 기업의 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다. 국내 5G 장비 납품 시장에서 LG유플러스는 여전히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고, 정부 차원의 장비 교체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이로 인해 국내 중소 통신장비 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몰렸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통신장비 점유율은 2021년 3.1%에서 2024년 2.3%로 하락한 반면, 화웨이는 미국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로벌 1~2위를 유지 중이다.


생활가전·TV도 ‘삼성·LG 따라잡기’…韓 프리미엄 전략 흔든다


과거 ‘싼 맛에 쓰는’ 이미지였던 화웨이의 생활가전도 최근 빠르게 탈바꿈하고 있다. 화웨이는 스마트TV,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등 전 제품군에 프리미엄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단순 하드웨어를 넘어 ‘하모니OS 기반 스마트홈 생태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싱스(SmartThings), LG전자가 씽큐(ThinQ)로 스마트가전 통합을 주도해온 것처럼, 화웨이는 IoT 기기 200종 이상을 하모니OS로 통합하며 중국 내 스마트홈 중심축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2024년 화웨이의 하모니OS TV 출하량은 전년 대비 65% 증가, 중국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전체 글로벌 TV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1위를 수성 중이지만, 중국 내 프리미엄 시장에선 TCL·하이센스에 이어 화웨이까지 바짝 뒤쫓는 3강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에어컨·냉장고·세탁기 부문에서도 삼성·LG의 프리미엄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화웨이는 고급형 냉장고에 AI 냉장고칩을 탑재해 내부 식재료의 신선도 예측, 유통기한 알림, 온도 자동 조절 기능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세탁기엔 ‘AI 수위조절’ 기능과 자체 개발한 에너지 효율 최적화 엔진을 넣어 한국 브랜드의 프리미엄 라인업과 유사한 사양을 구현하고 있다. 공기청정기·로봇청소기 등 기타 생활가전까지 제품 포트폴리오도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2023년 기준 화웨이의 생활가전 사업 매출은 4조 원을 돌파했고, 2024년엔 글로벌 톱10 가전 브랜드 진입을 목표로 투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에서는 중산층 이상을 타겟으로 한 프리미엄 모델 판매 비중이 급증하고 있어 삼성·LG의 ‘가성비는 중국, 프리미엄은 한국’이라는 구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패널이나 모터 기술 격차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격이 달랐지만, 지금은 격차가 현저히 줄었다”며 “화웨이는 브랜드 인지도까지 확보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프리미엄 가전시장 점유율을 방어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기술 격차는 좁아졌고, 중국 정부는 ‘전폭 지원’ 중...삼성·LG "어쩌나"


화웨이는 미국 제재 이후에도 기술 자립 전략을 명확히 했다.

SMIC와 협력해 7나노 칩을 자체 생산했고, OS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하모니OS 생태계를 본격화했다. 통신장비 부문에선 자국산 부품 90% 이상 내재화, 글로벌 공급망 없이도 운영 가능한 AI칩, 서버, 클라우드 시스템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이 같은 성과는 화웨이가 단순한 전자기기 제조사를 넘어 ‘탈서구 기술 체계’의 상징이자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뜻한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이제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기술 블록과 맞서야 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24년 기준, 화웨이는 중국 국유은행으로부터 총 400억 위안(약 7조 원) 규모의 저리 정책금융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보조금과 우대 대출, 자국 내 ‘우선 도입 의무화’ 정책 등 정책·금융·내수 유통 삼중 지원이 동시에 가동되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수조 원을 투자하면서도 정부의 R&D, 세제, 금융 지원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 속에서 삼성·LG의 대응 여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고부가 HBM 개발에 열중하며 수익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AI 시장의 전쟁터가 ‘칩+시스템+클라우드’로 확장되면서 화웨이처럼 수직계열화된 기업들과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LG전자는 프리미엄 가전에 집중하며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국 내 점유율 하락과 현지 생산거점 압박으로 수익성이 흔들리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중국 내 스마트폰·가전 판매 감소로 삼성·LG의 해외 생산법인 매출도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일부 라인은 이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삼성전자는 2024년 1분기 기준, 중국·동남아 가전 매출이 전년 대비 11% 감소, LG전자 역시 2023년 하반기 중국 시장에서의 프리미엄 TV 매출이 2년 만에 15% 감소했다.

삼성은 인도·베트남 중심 생산기지 확대, LG는 유럽 프리미엄 시장 집중 전략을 펴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화웨이 약진의 직격탄은 한국 중소·중견 부품기업들에게도 튀고 있다. 스마트폰, 가전, 통신장비 등에서 중국산 완제품이 한국과 제3국 시장을 점점 대체하면서, 국내 부품사의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입지도 약화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후공정, 배터리 소재, 센서·모듈 납품 기업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결국, 화웨이의 약진은 특정 품목의 점유율 문제가 아니라, 한국 주력 산업의 전반적인 경쟁 체력 저하를 유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엔 중국의 국가 차원의 전략·자본·정치 결합형 기업 육성 모델이 있다.

과거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와 도시바, 샤프 등을 하나씩 제쳤듯, 이제는 화웨이가 삼성과 LG를 동시에 쫓고 있는 시대다. 그 차이는, 과거엔 우리가 ‘민간 경쟁’으로 이겼다면 지금은 ‘국가 대 국가의 산업 전쟁’이라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가 화웨이란 강력한 경쟁상대와의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확실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이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