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업어키운 텐센트, 한국 게임·엔터 산업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로
텐센트는 왜 한국 게임, 콘텐츠 기업 지분을 사들이는가
규제 비껴간 투자 제국…정부는 알고도 방치
“지금은 침투 단계…다음은 지배일 수 있다”

[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는 동안 중국은 계속 배웠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넘어서는 중이다”
K-산업을 이끌던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의 전방위 압박에 흔들리고 있다. 한때 ‘저렴한 모조품’으로 치부되던 중국 기술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 기술력, 생태계 경쟁력까지 무기로 앞서나가고 있다.
화웨이, 텐센트, BYD, CATL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은 통신장비·게임·전기차·배터리 등 주요 산업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을 정면으로 압박하며 '기술 패권의 중심축'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던 그 구조적 역전이 지금은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이 연재는 ‘한국 기업 옥죄는 중국기업들’이라는 주제 아래, 각 산업별 주요 중국 기업의 성장 과정과 전략, 그리고 이로 인한 한국 산업의 충격과 대응 한계를 짚는다. 대한민국 산업계가 ‘잃어버린 20년’의 경고를 현실로 마주하지 않도록, 지금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를 묻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중국이 업어키운 텐센트, 한국 게임·엔터 산업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로
2004년 설립된 텐센트는 중국 선전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게임·IT·콘텐츠 플랫폼 기업이다. 메신저 ‘QQ’와 모바일 플랫폼 ‘위챗’으로 중국 내 플랫폼 지배력을 확보한 뒤, 게임과 콘텐츠, 클라우드, 핀테크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특히 2010년대부터는 전 세계 유망 콘텐츠 기업에 투자하며 ‘조용한 M&A 제국’을 구축해왔다. 지금은 전 세계 800개 이상 기업에 투자한 ‘투자 플랫폼’의 성격이 더 강하다. 미국 포브스는 텐센트를 “기술기업인 동시에 세계 최대의 콘텐츠 자본가”로 평가한 바 있다.
텐센트의 이 같은 글로벌 확장은 중국 정부의 직접적·간접적 지원 아래 이뤄졌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 당국은 ‘인터넷 강국 전략’과 ‘디지털 실크로드’ 계획의 일환으로, 텐센트·바이두·알리바바 등 빅테크 기업을 자국의 ‘문화 안보 병기’로 키워왔다. 텐센트는 중국 내 콘텐츠 규제와 검열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대가로, 중국 정부로부터 해외 진출 시 각종 세제 혜택과 금융지원, 외환 거래 유연성 등의 우대조치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해외에서 텐센트의 콘텐츠 투자 및 M&A가 이뤄질 경우, 이를 ‘중국 소프트파워 확대의 일환’으로 해석하며 사실상 외교·문화 확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텐센트가 어느덧 한국 게임·엔터 산업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가 됐다. 겉으로는 ‘전략적 투자자’를 자처하지만, 실상은 게임산업 생태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크래프톤(13.87%), 넷마블(17.52%), 시프트업(34.85%), 카카오게임즈(3.88%) 등 국내 주요 게임사의 지분을 보유하며, 텐센트는 단기간에 ‘K-게임’ 허리에 발을 들였다. 이중 시프트업의 경우, 창업자 김형태 대표의 지분(38.85%)과 텐센트의 지분 격차는 불과 4%포인트에 불과하다. 단 1~2%의 추가 매입만으로도 이사회 장악이 가능해지는 구조다.
텐센트의 공격적 행보는 게임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YG엔터테인먼트,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중견 엔터기업과의 접촉이 확인되며 K팝 분야로도 확장을 본격화했다. 실제 SM엔터테인먼트의 2대 주주로 등극하며 콘텐츠 제작력까지 흡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텐센트는 SM의 제작 역량을 활용해 중국 현지 아이돌 그룹을 선보이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제시했다.
텐센트는 최근 YG엔터테인먼트와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국내 중대형 엔터기업들과 접촉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던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일부가 이미 텐센트 계열로 이전된 사실과 맞물리며, 단순한 탐색 수준을 넘어선 '실질적 투자 확대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큐브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023년 텐센트와 음원 유통 계약을 맺은 바 있고 큐브의 대표 걸그룹 (여자)아이들 멤버 우기는 중국 국적의 아티스트인 점도 텐센트가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텐센트는 왜 한국 게임, 콘텐츠 기업 지분을 사들이는가
텐센트가 한국 기업 지분 인수에 공을 들이는 데는 명확한 전략적 배경이 있다.
첫째, 중국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국 내 매출 성장에 한계를 느낀 텐센트는 ‘외부 수익 다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개발력, 콘텐츠 다양성, 글로벌 흥행력이 모두 검증된 시장이다.
둘째,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규제 장벽이 낮아 ‘전초기지’로 삼기 적합하다.
셋째, 텐센트는 단순 수익을 넘어 글로벌 콘텐츠 생태계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게임, 음악, 드라마, 웹툰 등 다양한 장르의 IP가 세계적으로 통하는 몇 안 되는 국가다. 그들의 콘텐츠를 지배하면, 세계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동한다.
넷째, 텐센트는 '직접 경영은 피하고 간접 지배는 강화하는' 방식으로 우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외부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최적의 지분율'을 계산한 결과다. 즉, 단순 투자자처럼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로 생태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포지션을 확보하는 것이다.
유통망도 장악됐다. ‘니케’, ‘스텔라 블레이드’ 등 텐센트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는 중국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지분+시장' 두 가지 목줄을 동시에 잡힌 셈이다.
이제 텐센트의 눈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향하고 있다. YG, 큐브, SM 등 중견 연예기획사들과 접촉하며, IP 권리와 음악 유통, 플랫폼 지배력을 키우려는 시도가 포착된다. K-콘텐츠의 정체성과 자율성이 중국 자본의 통제 아래 놓이는 날도 머지않았다는 경고가 나온다.
규제 비껴간 투자 제국…정부는 알고도 방치
업계는 이 같은 텐센트의 움직임을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아닌 ‘시장 선점형 구조적 지배 전략’으로 해석한다. 특히 한한령 해제 가능성과 맞물려 중국 콘텐츠 시장이 다시 열릴 경우, 텐센트는 자신이 지분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 즉 한국 콘텐츠는 중국 정부의 ‘필터’를 통과한 기업을 통해서만 유통되는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에 대한 국내의 대응 체계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현재 텐센트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2~3대 주주로 포지셔닝해 실질적 경영 간섭 우려는 없다는 게 기업들의 공식 입장이지만, 투자 확대 이후 이사회 개입과 핵심 의사결정 관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라이엇게임즈, 슈퍼셀 등 글로벌 콘텐츠 기업들이 텐센트의 초기 지분 투자 이후 100% 지분 편입으로 이어진 전례가 여럿 존재한다.
텐센트의 이런 지배력 확대는 한국 정부의 규제를 거의 받지 않고 이뤄졌다. 외국인 직접 투자에 대한 산업별 제한조차 없는 콘텐츠 분야에서 텐센트는 '무방비' 상태의 한국 기업을 손쉽게 매입해왔다.
현재까지 텐센트가 국내에서 지분 투자로 규제 당국의 제재를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지분율 10% 이하는 신고 대상이 아니다’는 틈새를 교묘히 파고들며, ‘조용히 그리고 넓게’ 침투했다.
특히 한국 정부는 텐센트가 지분 확대를 통해 의결권을 확보하거나 이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해 별다른 입장조차 내지 않았다. 한 콘텐츠 기업 대표는 “지분 투자나 이사회 진입 같은 ‘실제 통제’에 이르기 전까지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며 “이대로면 산업주권은 서서히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미국과 일본은 이미 텐센트를 국가안보 위협 기업으로 규정하고, 게임이나 엔터 지분 투자를 제재 또는 반려하고 있다. 한국은 관련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지금은 침투 단계…다음은 지배일 수 있다”
2024년 기준 텐센트는 약 800개 기업에 투자하며 총 170조 원 이상을 집행했다. 자회사 포함 투자 자산은 2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한 IT 투자가 아닌, 콘텐츠 생태계 지배력을 겨냥한 구조적 확장이다.
텐센트는 전략적으로 한국 게임업체와 엔터업체를 주시하고 있다. 텐센트는 이미 해외에서 라이엇게임즈, 슈퍼셀, 마이너스틱 등 글로벌 스튜디오를 인수하며, 초기 지분투자 → 이사회 진입 → 완전 인수의 수순을 밟아왔다. 한국에서도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콘텐츠 업계에선 텐센트 관련 향후 시나리오를 세 가지로 본다. 첫번째는 ‘파트너십 유지’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텐센트와 협업을 계속하면서 일정 부분 종속을 감수한다. 그러나 이는 점점 더 많은 수익, 의사결정, 제작 방향이 중국의 뜻에 좌우되는 위험 구조다.
두번째는 ‘경쟁사 전환’ 시나리오다. 텐센트가 기존 협력관계를 종료하고 자사 게임 혹은 중국 내 한국 IP 카피캣을 통해 직접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이미 수차례 유사 게임을 통한 ‘시장 대체’가 있었다.
세번째는 ‘완전 인수’ 시나리오다. 한국 기업의 자본 부족, 상속 이슈 등으로 텐센트가 주요 게임사나 엔터사 전체를 매입하거나 경영권을 장악하는 구조다. 넥슨이 그 첫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가지 시나리오 모두 공통되는 사항이 있다면 '콘텐츠 통제'다. 텐센트가 K게임·K팝을 통해 중국 정부의 정치적 메시지나 규제 기준을 한국 콘텐츠에 반영하려는 시도에 나선다면, 이는 단순한 자본 문제가 아닌 ‘문화 주권’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돈이 아니라 ‘콘텐츠의 방향’을 누가 결정하느냐다. 텐센트의 자본이 콘텐츠를 통제하게 된다면, 이는 산업 침투를 넘어 한국 콘텐츠의 자율성과 정체성마저 외부에 종속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정부가 텐센트의 해외 전략을 방조하거나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텐센트를 ‘중국군 지원기업(CMIC)’으로 분류하며 제재를 가하고 있다. 국내 기업이 텐센트와 긴밀한 관계를 맺을수록, 중국 정치적 입장에 편승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학계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산업주권 침탈'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국게임학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텐센트의 넥슨 인수 시도는 단순한 외국인 투자 차원을 넘어 핵심 전략 산업에 대한 조직적 지배 시도”라고 규정하며, 게임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외국자본의 지분 인수에 대한 규제 장치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라는 시장을 의식하지 않고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에서, 텐센트는 ‘필요한 파트너’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대가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한국 콘텐츠 산업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는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