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D의 탄생과 '글로벌 전기차 제국'의 부상
BYD 한국 시장 진출..."우리에겐 확신이 있다"
국산차, 특히 중견 3사엔 '위기의 시작'
'위기설'과 생존 자신감 사이…BYD를 보는 두 시선

지난 3월 오픈한 BYD Auto 부산 수영 전시장.
지난 3월 오픈한 BYD Auto 부산 수영 전시장.

[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우리가 일본을 넘어섰을 때, 중국은 계속 배웠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넘어서는 중이다”

K-산업을 이끌던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의 전방위 압박에 흔들리고 있다. 한때 ‘저렴한 모조품’으로 치부되던 중국 기술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 기술력, 생태계 경쟁력까지 무기로 앞서나가고 있다.

화웨이, 텐센트, BYD, CATL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은 통신장비·게임·전기차·배터리 등 주요 산업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을 정면으로 압박하며 '기술 패권의 중심축'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던 그 구조적 역전이 지금은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이 연재는 ‘한국 기업 옥죄는 중국기업들’이라는 주제 아래, 각 산업별 주요 중국 기업의 성장 과정과 전략, 그리고 이로 인한 한국 산업의 충격과 대응 한계를 짚는다. 대한민국 산업계가 ‘잃어버린 20년’의 경고를 현실로 마주하지 않도록, 지금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를 묻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BYD의 탄생과 '글로벌 전기차 제국'의 부상


1966년 중국 안후이성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왕촨푸는 한때 학비조차 감당 못하던 빈곤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형의 지원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금속공학을 공부한 뒤 휴대폰 배터리 회사를 창업한다. 그 회사가 바로 오늘날의 비야디(BYD)다. 그는 휴대폰 배터리 제조로 쌓은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2003년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고, 불과 20년 만에 BYD는 '중국 전기차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2024년 BYD는 전세계에서 427만 대의 친환경차(전기+하이브리드)를 판매했다. 테슬라를 제치고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에 등극한 데 이어, 올해는 600만 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25년 1분기까지 이미 176만 대 이상을 판매했으며, 동남아, 유럽, 일본까지 시장을 확장 중이다.

2025년 5월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전기차 1위 업체 BYD가 현대자동차를 판매량 기준으로 앞지르는 성과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내수 및 해외 시장에서 견조한 흐름을 보이며 총 35만6,223대를 판매한 가운데, BYD는 같은 기간 총 38만2,476대를 판매하며 2만6,000대 이상 더 많은 실적을 올린 것이다.

특히 BYD는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부터 반도체, 모터, 제어장치 등 핵심 부품을 모두 내재화해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블레이드 배터리', '슈퍼 e플랫폼', 자율주행 시스템 '신의 눈' 등은 전기차 업계의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실제로 BYD는 5분 충전으로 400km를 달리는 초급속 충전 기술을 발표하며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러한 기술 경쟁력은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맞물려 있다. BYD는 정부로부터 세금 감면, 전기차 보조금, 해외진출 금융지원 등을 받았고, 일부 부품업체에는 어음 발행을 통한 자금 순환 구조도 구축해 재무적 유연성을 확보했다. 수직 계열화로 안정적인 부품 공급 체계를 갖춘 것도 BYD의 경쟁력이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모터, 전자제어장치(ECU)를 모조리 자체 조달하는 곳은 BYD가 유일하다. BYD가 수직계열화, 대규모 R&D, 가격 전략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공룡 기업'이 된 것이다.

이같은 BYD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 전체에 경고등을 켜고 있다. 특히 전기차 분야에서 독자 노선을 걸어온 현대차그룹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현대차는 최근 중국 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전기차 전용 라인업을 재정비하고, BYD를 겨냥한 가성비 모델 확대 전략을 검토 중이다. 

업계에선 "BYD가 유럽과 일본에서까지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현대차도 한국 내 가격 전략과 기술 투자에 더욱 신경 쓰게 됐다"는 말이 나온다. 한 글로벌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과거 테슬라가 기술로 긴장시켰다면, BYD는 가격과 기술을 동시에 압박한다”며 “한국 완성차 기업 입장에서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경쟁자”라고 평가했다.


BYD 한국 시장 진출…"우리에겐 확신이 있다"


아토3.
아토3.

BYD는 2025년 초, 한국 승용차 시장에 공식 진출했다. 아토3, 씰(SEAL), 씨라이언7 등 3개 차종을 중심으로 연내 라인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소형 SUV 아토3는 전기차 보조금 적용 시 2000만원 후반대로 구매 가능해졌으며, 출시 2달 만에 1000대 이상이 판매됐다. 이는 국내 수입 전기차 모델 중에서도 단연 높은 수치다.

BYD는 단순히 '가격이 싼 차'가 아니다. 아토3는 유럽 NCAP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받았고, 자체 플랫폼 기반의 주행성능과 안정성으로 "싸지만 위험하지 않은 차"라는 인식을 만들고 있다.

BYD 측은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아토3 엔트리 트림은 3150만원으로, 보조금을 적용하면 2000만원대 후반에 구매할 수 있다. 자체 개발한 전기차 전용 e플랫폼 3.0으로, 전체 부피와 무게를 줄여 주행거리 등 성능을 끌어올렸다. 아토3에 탑재한 블레이드 배터리는 셀투팩(CTP) 방식으로 과열 위험을 낮췄다.

게다가 BYD는 한국 시장 공략을 위해 전국 15개 서비스센터와 12개 전시장을 구축했으며, 딜러사와의 파트너십도 체계적으로 확립했다. 한국 정부의 까다로운 친환경 인증도 모두 통과했다. 류쉐량 BYD 아시아총괄은 “한국은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 브랜드 정착이 목표”라며 “정비 생태계 확대와 소비자 체험 중심의 브랜드 경험으로 신뢰를 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한국 시장 성공을 확신하는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약 1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화교 인구다. 이들은 중국 브랜드 차량 구매에 호의적이며, 조선족과 귀화인을 중심으로 'BYD의 초기 팬층'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는 중국계 자본의 렌터카 시장 장악이다. 사모펀드 어피너티가 SK렌터카에 이어 롯데렌터카 지분까지 확보하면서, 한국 렌터카 시장의 1, 2위가 모두 중국계 손에 들어갔다. 이는 BYD가 법인차·렌터카를 통한 대규모 납품과 브랜드 노출을 확대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렌터카 시장은 가격과 유지비를 중시하는 법인 고객이 많기 때문에, '가성비' 전기차인 BYD에게 유리한 무대다.


국산차, 특히 중견 3사엔 '위기의 시작'


BYD의 등장은 한국 시장에서는 현대차·기아를 정면으로 압박할 뿐 아니라, KG모빌리티·르노코리아·한국GM 등 중견 3사를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실제 올 상반기 국내 중견 3사의 내수 판매는 7.9%로 떨어졌고, 르노코리아를 제외하곤 대부분 판매량이 급감했다. 한국GM은 전년 대비 40% 가까이, KG모빌리티는 23% 이상 판매가 감소했다. KG모빌리티는 최근 BYD와 협력해 하이브리드 모델을 개발 중이며, 르노코리아도 BYD 기술 기반의 SUV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처럼 중견 3사의 생존 전략이 점차 중국 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기술 의존이 일시적 협력을 넘어 구조적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BYD는 배터리와 플랫폼, 제어 시스템까지 모두 내재화한 상태로, 부품을 현지 협력사로부터 조달하지 않아도 되는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췄다. 이는 기존의 국내 부품업체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으며, 중견 3사는 '생존을 위해 BYD 부품을 받아 조립만 하는 조립기지'로 전락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BYD가 저가 공세를 통해 렌터카·법인 시장을 장악하고, 브랜드 체험을 확산시킨다면, 일반 소비자 시장까지도 순식간에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 중견 3사 입장에선 신차 라인업 확대나 마케팅 투자 여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압도적인 생산능력과 기술·가격 경쟁력을 가진 BYD와 정면 승부는 사실상 어렵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BYD가 아직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국내 중견업체들에겐 이미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대로 간다면 3~5년 내 중견 3사 중 한 곳은 대형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한국GM은 철수설이 나돌고 있다. 직영 서비스센터와 부평 공장의 일부 자산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철수를 염두에 준 선제작업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위기설'과 생존 자신감 사이…BYD를 보는 두 시선


일각에선 BYD의 지나친 저가 공세가 '출혈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재무 위기설도 제기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 중국 딜러들이 폐점하거나, 협력사 대금 지연 문제가 보도된 바 있다.

BYD의 경우 자사 22개 모델을 대상으로 최대 34% 할인을 단행했고, 지리차와 체리차, 광저우자동차, 상하이자동차 등 10곳에 가까운 차 브랜드들도 잇따라 차량 가격을 낮추며 연쇄 할인을 이어갔다.

작은 브랜드의 생존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이른바 '치킨 게임'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중국 정부도 전기차 산업 붕괴를 막기 위해 업체들이 무리한 가격 경쟁을 벌이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BYD는 지난해 매출 145조원, R&D 투자액 10조원, 현금 보유액 29조원이라는 초대형 스케일로 반박하고 있다. 부채비율도 70%로 글로벌 평균보다 낮으며, 할인은 블랙프라이데이식 정기 프로모션이라는 설명이다. 요컨대, "돈 벌어서 싸게 파는 것"이지, "돈 없어서 덤핑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BYD가 중국 시장에서의 치킨게임 승자가 되고 나면 전세계 시장 공습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BYD는 동남아 현지 공장, 인도네시아 1조원 투자, 유럽 전용 딜러망 확대 등 글로벌 진출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한국은 이 글로벌 전략의 ‘검증된 전기차 선진시장’으로, ‘성공하면 글로벌 벤치마크’가 되는 중요한 시험장이기도 하다.

업계에선 BYD의 향후 행보에 따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뒤바뀔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정부가 미국·EU처럼 강력한 상계관세나 진입 규제를 하지 않을 경우, BYD는 단기간에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 산업계 내부에선 “BYD는 아직 진입 단계일 뿐, 문제는 이제부터”라는 경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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