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등에 업고 폭발적 성장...독보적 가격경쟁력으로 전세계 '호령'
CATL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압도적 1위...K-배터리 3사는 줄적자
가성비 원툴에서 기술까지 진화하는 CATL...한국 진출도 본격화
정책 지원 기대하지만 실제 효과 미지수...'2등 전략'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하다

[중앙이코노미뉴스 김국헌] “우리가 일본을 넘어섰을 때, 중국은 계속 배웠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를 넘어서는 중이다”
K-산업을 이끌던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의 전방위 압박에 흔들리고 있다. 한때 ‘저렴한 모조품’으로 치부되던 중국 기술 기업들이 이제는 가격뿐 아니라 품질, 기술력, 생태계 경쟁력까지 무기로 앞서나가고 있다.
화웨이, 텐센트, BYD, CATL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은 통신장비·게임·전기차·배터리 등 주요 산업에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대표 기업들을 정면으로 압박하며 '기술 패권의 중심축'을 중국으로 옮기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던 그 구조적 역전이 지금은 우리에게 벌어지고 있다.
이 연재는 ‘한국 기업 옥죄는 중국기업들’이라는 주제 아래, 각 산업별 주요 중국 기업의 성장 과정과 전략, 그리고 이로 인한 한국 산업의 충격과 대응 한계를 짚는다. 대한민국 산업계가 ‘잃어버린 20년’의 경고를 현실로 마주하지 않도록, 지금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를 묻는 기획이다. [편집자 주]
중국 배터리 기업 CATL(닝더시대)이 한국 배터리 산업을 다방면에서 압박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기술력과 글로벌 투자 확장, 인재 확보 시도까지 나서면서 국내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를 전방위로 흔들고 있다.
K-배터리 3사는 점유율 하락과 함께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수세적 국면에 몰려 있다. 시장의 중심이 바뀌고 있음에도, 전략 전환은 더디고 경쟁력 확보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 정부 등에 업고 폭발적 성장...독보적 가격경쟁력으로 전세계 '호령'
CATL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2011년 중국 푸젠성 닝더에서 설립된 이 회사는 초창기엔 애플 아이폰에 배터리를 공급하던 ATL(Amperex Technology Limited)의 전기차 배터리 부문이 독립한 형태였다. 하지만 창업자인 쩡위췬(曾毓群)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전략적 지원, 그리고 중국 내 전기차 보급 확대가 맞물리며 CATL은 빠르게 성장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2015년부터 자국 배터리 업체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펼치자, 테슬라를 비롯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CATL 배터리를 채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LFP 배터리 기술력 확보, 대규모 투자에 기반한 생산능력 확대, 수직계열화 전략까지 더해지면서 CATL은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 배터리 시장의 ‘룰 메이커’로 올라섰다.
CATL의 성장은 기술력과 자본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중국 정부의 ‘전방위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은 전기차를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2015년부터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사실상 봉쇄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CATL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구조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여기에 국영 은행들의 저리 자금 지원, 지방정부의 공장 부지 무상 제공, 니켈·리튬 등 광물 확보를 위한 외교적 뒷받침까지 더해졌다. 기술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CATL은 가격은 낮고 안전성은 높은 LFP 배터리 기술을 빠르게 상용화했고, 자체 BMS(배터리관리시스템), 냉각 기술 등에서도 삼성SDI·LG엔솔 못지않은 수준의 내재화를 이뤘다. 여기에 수직계열화된 원재료 공급망과 연간 600GWh에 달하는 압도적 생산능력까지 더해지며, 지금의 '넘사벽 CATL'이 완성됐다.
가격경쟁력에서도 CATL은 독보적이다. 중국 정부의 전방위 지원을 기반으로 인건비·설비비용·원자재 조달비 등을 낮춘 결과, 국내 배터리 업체가 따라갈 수 없는 ‘반값 배터리’를 실현하고 있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중심으로 중저가형 전기차 수요를 선점한 것도 주요 원인이다. 배터리의 원재료가 되는 광산을 중국 업체들이 상당수 보유한 것도 강점이다. 음극재 재료로 쓰이는 흑연 광산 45개 중 30개를 중국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또 삼원계는 물론 LFP 배터리에까지 들어가는 리튬 광산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특히 CATL은 전기차 내수 시장이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을 기반으로 연간 900만 대 이상에 탑재되는 배터리를 공급하며, 규모의 경제 효과까지 누리고 있다. 유럽과 북미, 동남아, 인도네시아 등까지 확장 중인 생산기지를 통해 글로벌 생산능력도 빠르게 확장 중이다.
특히 CATL은 인도네시아에 8조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프로젝트에 착수한 상태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는 규모다. 이 통합 시설은 광산 채굴, 제련소, 고압산 침출(HPAL) 공정, 전구체 및 양극재 생산 등 여러 공정을 아우른다.
세계 최대 니켈 매장·생산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니켈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강국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2020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니켈 광산 채굴-제·정련-전구체-양극재-배터리셀 생산으로 이어지는 그랜드 패키지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파트너로 CATL, LG에너지솔루션 등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 중심 컨소시엄은 인프라 부족과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지분 구조 갈등 등을 이유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LG에너지솔루션도 프로젝트 자체에서 빠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획에 따라 CATL은 이번에 광산 채굴부터 양극재 생산까지 이어지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국영 배터리 투자회사 IBC와 약 12억 달러(약 1조6000억원)를 투자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셀 공장도 지을 예정이다.
CATL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압도적 1위...K-배터리 3사는 줄적자
'가성비'와 정부 지원이라는 압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은 ‘독주’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12월 누적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기준 CATL의 점유율은 37.7%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잇는 LG에너지솔루션은 13.6%에 불과했고, 삼성SDI와 SK온은 각각 4.9%, 4.6%로 여전히 한 자릿수 점유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2025년 들어 이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1~5월 기준으로 CATL은 38.4%까지 점유율을 끌어올린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12.5%로 하락했다. 삼성SDI는 4.9%, SK온은 4.3%로 더 쪼그라들었다. ‘K배터리 3사’ 모두 CATL과의 격차가 벌어지는 중이며, 이는 단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추세라는 데 업계의 우려가 쏠린다. 국내 3사의 올해 1~5월 점유율을 모두 합쳐봐도 21.7%로 38.4%인 CATL보다 16.7%포인트 낮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실적에서도 크게 고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1분기 3,74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미국 세액공제(AMPC) 4,577억 원을 제외하면 적자 전환이다. 삼성SDI(-4,341억 원), SK온(-2,993억 원)은 1분기부터 이미 적자를 기록 중이다.
증권가에선 2분기 실적도 낙관적이지 않다. 신한투자증권은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영업이익을 전분기 대비 약 22% 줄어든 2,911억 원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IRA 보조금이 유지될 경우 일정 부분 방어가 가능하겠지만, 그 자체가 ‘일시적 효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품질이 더 우수하다고 알려진 삼원계에 몰두해왔고, CATL은 가성비가 좋은 LFP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국내 업체들이 선점했던 삼원계 시장에서도 CATL이 점유율을 확대하며 K-배터리의 강점을 희석시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EV볼륨스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삼원계 배터리 시장에서 유럽 전기차에 탑재된 중국산 배터리는 총 22.8GWh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증가했다. 4월에는 CATL이 삼원계 시장 유럽 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캐즘에 접어들고 전기차도 다양한 가격대 제품이 생산되면서 LFP 배터리 도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K-배터리 업체에 위기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 세계 전기차에 탑재된 양극재 총 적재량은 약 67만1800톤으로, 이 중 LFP 양극재 적재량은 37만7400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8.2% 급증했다. 같은 기간 삼원계 양극재의 적재량은 29만4400톤으로 18.0% 증가에 그쳐, LFP가 성장속도에서 확연히 앞서 나가고 있다. 양극재 적재량 중 LFP가 차지하는 비중은 56.2%에 달했다.
가성비 원툴에서 기술까지 진화하는 CATL...한국 진출도 본격화

최근들어 CATL의 광폭 행보는 K-배터리 업계에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CATL은 가격 경쟁력에 치중하고 기술력은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최근에는 기술적 도약으로 K-배터리 3사를 위협하고 있다.
CATL은 올해 4월 상하이 오토쇼 개막을 앞두고 진행한 테크데이 행사에서 상용화 가능한 수준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다수 발표했다.
우선 5분 충전으로 520㎞를 주행하는 ‘션싱’ 2세대 배터리가 소개됐다. 이 고속충전 배터리는 2위 기업인 BYD가 올해 3월 선보였던 배터리(5분 충전, 400㎞ 주행)와 비교해도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다.
여기에 올해 12월 전기 승용차용으로 상용화를 예고한 나트륨 배터리나 흑연을 사용하지 않은 전기차 보조배터리 등 신제품도 선보였다. 자체 브랜드 ‘낙스트라’로 출시되는 나트륨 배터리는 단순한 가격 경쟁력을 넘어 고온이나 영하 40도에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는 등 기술적 장점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나트륨 배터리는 반응성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화재 발생 가능성도 낮다. 본격적인 상용화에 들어간 기업은 아직 없다. 물론 나트륨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나 양산 등 여전히 난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CATL은 업계 선두주자로 기술력을 증명한 셈이다.
여기에 CATL은 1회 충전으로 1500㎞ 주행이 가능한 ‘듀얼 코어’ 배터리, 음극재에서 흑연을 뺀 보조 형태 배터리까지 무대에 올렸다.
전기차는 짧은 주행거리와 부족한 충전 인프라가 약점으로 지목됐는데 CATL이 이를 해결한 기술력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CATL은 자원 확보, 생산지 확장, 시장 점유율 확보에 그치지 않고 한국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초 서울 강남에 ‘CATL코리아’를 설립한 데 이어 최근에는 테크니컬 솔루션 엔지니어 채용 공고를 국내에 냈다. 링크드인과 구인 플랫폼에 올라온 공고에 따르면 근무지는 서울이며, 국내 배터리 경력직 엔지니어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는 단순 판매법인 설립을 넘어 한국 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 진출까지 겨냥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1조원 규모 ESS 입찰 사업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업계에선 “CATL이 기술력과 가격뿐 아니라 인재 확보까지 나선다면 국내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 지원 기대하지만 실제 효과 미지수...'2등 전략'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하다
CATL의 아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K-배터리 업체들은 정부의 정책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 이재명 정부는 '배터리 르네상스'를 비전으로 제시하며 정책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고체 등 차세대 기술 지원 △세제 개편 △지역 균형 전략 등 전방위 대책이 후보 시절 공약을 중심으로 구상되는 단계다. 배터리 초격차를 되살려 한국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방향성은 분명하지만 아직 구체적 이행 방안 마련이 과제로 남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서부터 배터리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수 차례 강조해왔다. 주요 공약으로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의 실증 및 상용화 △국내 생산 촉진을 위한 세제 지원 △배터리 산업 삼각벨트 구축 등이 꼽힌다. 특히 전고체 배터리와 재활용·리사이클링 기술을 병행 지원하겠다는 구상은 현 정부가 산업 생존 전략 일환으로 내세우는 접근이다.
이 대통령은 생산세액공제 및 이월공제 기준 조정을 검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처럼 세액공제를 환급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이 같은 변화가 중소·중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원석 iM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리포트를 통해 "배터리 셀과 소재 기업들이 선제적 투자를 단행한 후 자금 조달 압력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한국판 IRA 도입과 정책금융 확대가 이뤄질 경우, 국내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경쟁 속에서 반등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공급망 측면에선 배터리 핵심 소재와 원료광물 확보를 위한 정책금융 및 안정화 기금도 확대될 전망이다.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분산형 에너지 체계 전환도 추진되고, 지역균형발전 전략으로서 배터리 삼각벨트 구상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충청·영남·호남을 각각 △배터리 제조 △핵심 소재 및 수요 대응 △원료 광물 및 양극재 공급의 중심지로 삼아 핵심 기능을 분산 배치하고, 여기에 전력·용수·인력 등 산업 기반 인프라를 패키지로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이런 정책들이 실효성 있게 추진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또 이런 정책들이 추진되더라도 CATL을 앞서갈 가능성도 낮아보이는게 사실이다.
CATL은 정부 주도의 막대한 자본과 인허가 및 수요까지 총동원하며 시장 자체를 다시 쓰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K-배터리 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2등 전략'에 나서야 할 때"라고 조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속도감 있는 지원과 함께 먹거리를 찾아 지속적으로 도전해야 한다"며 "전기차 캐즘, 중국 저가 공세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AI시장 발전으로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결국 K-배터리 3사의 생존 해법은 ‘같은 방식으론 절대 못 이긴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무한 저가, 무한 확장을 무기로 한 CATL을 정면으로 상대하기보단, 차별화된 기술과 고객 중심의 맞춤형 전략, 글로벌 규제 프렌들리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IRA 보조금 등 미 시장을 발판 삼아 배터리 내재화 흐름에 올라타고, 프리미엄 차량 중심의 고성능·고안전 배터리 포지셔닝을 분명히 하며, 장기적으로는 ‘탄소·안전·재활용’을 통합 관리하는 ESG 중심의 생태계까지 끌어안는 고부가 전략이 필요하다. CATL의 그늘을 벗어나려면, 단순한 ‘2등 전략’이 아니라 아예 다른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